궁보무사 <215>
궁보무사 <21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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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잃은 형제들의 슬픔이 누그러질때 돌아오려무나"
5. 총각무사 방서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아구구구."

방서의 억센 손아귀에서 풀려난 원평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방금 전까지 놈의 손아귀에 어찌나 세게 잡혔던지 머리를 조금 움직일 적마다 목덜미가 뻑적지근한 게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부하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자리이니 원평은 이런 아픈 기색을 내보일 수도 없었다.

"자, 어서 가자!"

원평은 아픔을 억지로 참아가며 부하들과 방서를 데리고 장수 외북의 처소를 향해 떠났다.

떠돌이 무사 방서!

그는 원래 저 멀리 북동쪽 앙성 땅에서 유명한 무예가 집안의 열두 남매 중 맨 막내로 태어났다. 이미 열 한명의 자녀를 두었던 그의 어머니가 그를 거의 오십 줄에 다다라서 낳았으니 그는 손위 형제들과의 나이 차이가 제법 컸다. 방서는 타고난 운동 신경과 몸의 유연함으로 각종 무술을 누구보다 더 빨리 잘 익혔으며, 실제로 그가 10대 중반 무렵쯤 될 때부터는 그의 무술 실력을 당해낼 사람이라곤 인근 일대에 아무도 없었다.

장래가 지극히 촉망되는 방서를 사위로 삼고자 과년한 딸을 가진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지만 방서는 결혼하는 데 있어 딱 한 가지 원칙이자 기준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반드시 절색의 미모를 갖춘 처녀를 자기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

아마도 그의 형수들 모두 빼어난 미녀였던 탓에 그 자신도 반드시 미녀를 아내로서 맞아들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굳혔을는지도 모른다.

노환으로 인하여 그의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난 후 그의 어머니는 서둘러 색싯감을 구해 가지고 막내인 방서를 짝지어 주려고 했지만, 그러나 미녀를 무척 밝히는 편인 방서는 어머님의 뜻을 정중하게 거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참한 색싯감이랍시고 방서에게 권하는 여자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가 정해놓은 여자의 미적 기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장가를 가라는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그는 뛰어난 미녀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미적 기준내지 수준으로 볼 때 중간치 정도는 충분히 되어진다고 생각되는 처녀 하나를 마침내 구해가지고 혼인 승낙을 받고자 어머님을 함께 찾아뵈었다.

그러나 이제 할망구가 되어버린 그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결혼하겠다며 데려온 처녀를 영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방서는 눈물을 머금고 그 처자와 헤어져야만 했고, 결국 그 처자는 다른 데로 시집을 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후 실로 엉뚱한 문제가 벌어지고 말았으니, 그의 어머니께서 자기 막내 아들이 데리고 왔던 처자를 보고 정말로 충격을 받으셨는지 아니면 나이가 너무 들어 노망을 부리시는 건지 몰라도 그저 틈만 있으면, '아이고, 저 놈(방서)이 데려온 여자 때문에 내가 못살! 아, 못살아! 그 년은 나를 죽이고 갈 년이야!'하면서 중얼중얼거리시다가 마침내 자리에 드러누워 끙끙 앓고 말았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 막내아들 방서가 데리고 왔던 처녀에 대한 악담을 떠드셨는데 그러다보니 방서의 입장이 몹시 난처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지 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 그런 말씀을 하셨으니 그의 형제들은 자연히 막내를 의심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던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장사지내 드리는 바로 그날, 그의 형제 가운데 가장 이해심이 많은 넷째 형이 슬그머니 방서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형제들은 지금 어머니 잃은 슬픔을 막내인 너에게 대신 화풀이하려고 들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너는 잠시 멀리 나가있다가 어머니 잃은 우리 형제들의 슬픔이 어지간히 누그러질만 할 때 다시 돌아오려무나. 그때 네가 금의환향하듯이 꽃같이 예쁜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온다면 우리 형제들이 과거는 모두다 잊고 너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 아니겠느냐"

방서는 넷째 형의 말이 옳다고 여겨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앙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떠돌이 무사 짓을 하며 한참 돌아다니다가 팔결성이 오창 평야에서 나오는 질 좋은 양곡 때문에 제법 잘 산다는 소문을 듣고 방서는 몇 달 전 이곳을 찾아와 장수 두릉의 처남 정북의 집에 식객(食客)으로 머물게 된 것이었다.

그림 김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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