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무심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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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now" is your golden age!
일전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를 갔다 왔다.

예전에 처음 부석사를 찾았을 때는 안양루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단풍나무의 울긋불긋한 색깔과 과수원의 까치밥으로 남은 빨간 사과가 여전히 가을임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산꼭대기 소나무 숲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 그런 날이었다. 부석사의 첫 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게 되었고, 그 후 그 풍경을 사랑해서 몇 번 부석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에는 우연히 그쪽 지역의 역사학 교수님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교수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부석사를 돌아보면서 나는 참으로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발자국 한 번, 눈길 한 번 옮길 때마다 만나게 되는 섬돌 혹은 주춧돌 하나하나, 기와 한 장, 지붕 형태, 기둥 모양, 창문의 모양과 문양, 부속 건물들의 이름과 의미와 용도, 부처님의 앉은 자세와 손의 모양과 표정, 옷의 주름, 주변의 배경으로 있는 불화들. 이른바 전생, 금생, 후생의 세계 전부가, 우주 전부가 절 안에 다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내가 보고 다녔던 것들이 실은 거의 껍데기뿐임을 안타깝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르니라.'는 유홍준의 말을 빌리자면, 결국 나는 부석사를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알지도, 보지도 못했으며, 결국 새롭게 눈을 뜨지도 못했던 것이다.

전 충북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정범모 박사가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낮에는 학교 공부하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로 접시 닦고, 그것이 끝나 숙소에 가면 밤 늦도록 레포트 준비하고 하는 생활이 하도 힘들어서 그 어려움을 지도교수에게 푸념하듯이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지도교수는 'But, "now" is your golden age!'라고 말하면서 웃더라는 것이다.

또, 예전에 몇몇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 끝에 당신이 만약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서로 물어보고 웃은 적이 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대답했고, 그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지 다시 자신의 인생과 승부를 결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학생들은 그동안을 초조와 안타까움 속에서 지내왔을 것이다. 수도 없이 졸기도 했고, 잠을 자고 일어나는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몰래 교실을 나오기도 했을 것이고, 또 때론 자고 일어나 베갯잇이 검붉게 물든 것을 발견하고는 괜스레 처연해지기도 했으리라. 그리고 때론 보다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이런 고통스럽고 징그러운 날들이 다시는 그들의 생애에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가장 고통스럽고 징그럽게 여기고 있는 오늘 같은 날이 학생들에게는 바로 'golden age'일 수 있음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자기의 삶을 위하여 밤새 노력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불행의 토지 위에서 싹을 내민다고 했다던가.

오늘, 수능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모두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길 바라고, 그러는 한편, 이 황금시절인 고등학교 시절을 '사랑'해서, 제대로 '알고', 올바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아가 이들이 만나는 매일매일이야말로, 그것이 고통스러운 날들이건 행복한 나날들이건, 실로 황금시절임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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