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단이의 깃발
향단이의 깃발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5.08.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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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내몽골의 후허하오티 공항이다.

작은 키에 뭉툭하면서도 굽 높은 검정색구두가 먼저 눈에 띄었다. 여행가이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었다. 내 우려와는 달리 그녀의 발걸음은 씩씩하고 빨랐다. 대신 이동하는 차안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향단이의 말투가 신경 쓰였다.

조선족특유의 발음과 함께 한국말이 서툴러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결혼한 삼십대 중반으로 아들이 있고 부모가 한국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들었다.

이번 여행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투어가 시작되면서 부터다.

목적지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세 시간이었지만 관람하고자 하는 곳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차안에서 몇 사람이 불만스럽게 말을 했다.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안타깝게도 모든 곳에서 우리는 그녀의 해설을 듣지 못했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내몽골에는 여러 문화 유적들이 남아 있었다.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에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고생박물관에서는 공룡과 매머드화석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라마교사원인 대소사, 왕소군박물관과 그녀의 묘도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으나 답답하게도 그 나라의 글을 알 수 없으니 허사였다. 그저 유물과 년도를 보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중국황사의 진원지인 쿠부치 사막도, 끝없이 펼쳐진 시라무원초원조차도 내가 원하는 지적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 감동은 반으로 줄었다.

현지에서 가이드로부터 역사해설을 들으면 기억이 더욱 생생해질 거라는 나의 기대는 무산되었다. 향단이는 각자 알아서 구경하고 버스로 돌아오는 시간만 강조했다.

게다가 제시간에 돌아와도 향단이의 붉은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우리가 먼저 와서 기다리며 이번 여행은 최악이라 불평하다 나중엔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곤 했다. 허나 이번에도 늦게 온 향단이가 변명을 하자 일행 중 한사람이 쌓였던 불만을 가시를 세운 채 터트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에 그만 그녀의 눈물보가 터졌다. 하늘로 향해 펄럭이던 붉은 깃발이 땅을 향한다. 향단이의 서러운 울음에 당황한 건 일행들이다.

여행하는 내내 불만 속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향단이의 맑은 웃음과 씩씩함이었다. 아직도 철없는 내 자식과 다르게 그녀는 삶에 대한 뿌리가 깊고 단단했다. 고된 가이드생활을 하는 것은 아이 만큼은 한국으로 보내 교육시키겠다는 꿈 때문이라니 요즘 만나기 쉽지 않은 단단한 엄마라 신통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나는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그 것으로 다 덮어 주었다. 일행 대부분의 마음도 나와 같았을 터이다. 자식과 같은 향단이를 향한 위로의 말이 겹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면 그 곳에 머무는 동안은 가이드가 우리의 보호자가 된다.

특이하게도 이번 여행지에선 우리가 가이드의 보호자가 된 듯싶다. 그래도 잔잔한 웃음이 일렁이는 건 비행기를 비향기라 발음하는 향단이의 밝은 웃음과 씩씩한 모습이리라.

언제 울었냐는 듯 그녀는 세모진 붉은 깃발을 들고 제 혼자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우리를 또 다시 웃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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