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정년 보장은커녕
60세 정년 보장은커녕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07.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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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에이, 말뚝이나 박을까. 

30여 년 전 군대 생활을 할 때 전역을 앞둔 ‘왕고참’들에게 많이 듣던 얘기였다.

사회에 나가 대학이나 직장 등 돌아갈 곳이 없던 말년 선임들은 어김없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사회에 나가 딱히 할 일이 없고 미래가 불투명했던 제대 말년 군인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었으리라.

실제 그렇게 말뚝을 박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기술병과(兵科) 복무자들이 그랬다. 당사자로서는 직업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로서는 전문 기술력을 지닌 우수 병역 자원을 확보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묘안이 바로 ‘말뚝박기’였다.

요즘에도 이 말뚝은 없어지지 않았다. 바로 현역 부사관 제도다. 

일반인이 민간인 신분으로 부사관 시험을 보는 것도 있지만 현역병도 일병 이상 계급이 되면 군 복무 중 부사관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를 통해 육군은 매년 3차례 정도 전문 기술병과 부사관을 뽑고 있다. 

그런데 이 부사관 모집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다. 예전처럼 그냥 중대장 추천만 받고 쉬 들어가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2013년도 제5기 육군 부사관 모집 때 평균 경쟁률은 무려 18대 1이었다. 추천서와 경력 증명서만 제출하면 됐던 예전과는 달리 까다로운 ‘시험’도 치러야 한다. 

시험 비중의 30%나 차지하는 필기시험을 봐야 하고 체력 평가는 물론 기본. 여기에다 지휘관 추천 점수, 직무수행 능력평가, 인성검사, 신체검사 등 관문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절차를 밟아 통과되면 어떤 열매를 따게 될까. 바로 사회에서의 9급 공무원과 같은 신분을 보장받게 된다. 그래서 경쟁률이 센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신분이 민간 사회의 9급 공무원처럼 ‘60년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사의 정년은 40세, 중사의 정년은 45세, 상사의 정년은 53세다. 

진급을 제때 못하는 경우 ‘20년 군 생활’을 채우지 못해 연금 혜택도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지금은 근속 승진 제도가 생겨서 나아졌지만 2008년 이전에는 중사나 상사 진급을 못해 40세, 45세에 ‘직장’을 잃고 나가야 하는 예비역 부사관들이 허다했다.

이들 ‘청년 은퇴자’의 사회 진출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사회생활을 했다. 

군에서 이렇다 할 사회 적응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받아 불과 3~4년새 덜컥 전 재산을 말아먹는 경우가 흔했다. 식당 등 자영업을 하다 망한 사람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고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고3생들 사이에서 부사관학과가 인기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현재 전국 50여개 대학에 설치된 부사관학과는 매년 평균 경쟁률이 10대 1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막상 군대 일선에서는 지금, 은퇴를 앞둔 40대 청년 부사관들이 또다시 취업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현재 부사관학과에 재학중인 대학생들이 입대 후 20년 후에 또다시 취업준비생이 돼 학원가를 헤매는 모습. 현재와 같은 계급 정년제가 유지된다면 ‘안봐도 비디오’다. 

선진 정예 강군을 ‘완성’하겠다는며 지난 2006년부터 추진해온 국방부의 ‘국방개혁 2020 프로젝트’에 어떤 내용들이 담겼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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