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빵집은 어디로 가라고
학교 앞 빵집은 어디로 가라고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07.13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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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예전에 기업들이 아주 손쉽게 돈을 버는 수법이 있었다.

바로 ‘어음깡 장사’였다. 하청업체에 공사 대금을 줄 때 6개월, 12개월짜리 어음을 주고 이를 즉석에서 할인해 주면서 폭리를 취했다. 

이들 기업의 본사 건물에는 어김없이 어음 할인을 해주는 장소가 있었다. 하도급 업자가 회사 2층에 있는 경리부에서 공사 대금으로 어음을 받고 나서 건물 구석에 있는 어음 환전상을 만나 어음을 할인하는 모습. 아주 흔하게 보던 풍경이었다.

어음 할인 이자는 살인적이었다. 월 6부는 보통이었고 1할을 넘는 때도 있었다. 가령 1000만원권 6개월짜리 어음을 즉석에서 현금으로 만들려면 60만원(6부 이자)×6개월=360만원을 선이자로 떼여야 했다.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 어음을 할인할 수도 있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어음깡 장사’는 대부분 원청업체 가족들이 직접 했다. 받은 어음을 다른 곳에서 더 싼 이자로 할인할 경우 보복이 뒤따랐다. 

공사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가 하면 심지어 다른 회사의 일감도 따지 못하게 방해했다. 약탈이나 다름없었다.

몇 해 전 모 기업은 직원들에게 1000만원 안팎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장사 잘했다고 보너스를 준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에 납품을 하는 하청업체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이른바 CR(Cost Reduction),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받은 것이다. “결국, 하청업체의 등골을 뽑아서 자기 직원들 보너스 준 셈이죠. 하청회사들 배부른 꼴을 못 보겠다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의 말이다. CR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1·2차 벤더들에겐 저승사자처럼 무서운 용어다.

돈 좀 벌어서 직원들에게 보너스도 제대로 주고 회사 부채라도 갚을라치면 갑자기 들이닥치는 CR. 대기업에 납품하는 웬만한 중소기업들이면 거의 모두가 당해봤을 ‘공포’ 그 자체다.

전남 순천지역 상인들이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대기업 계열 대형 아웃렛의 입점소식 때문이다. 

LF그룹은 순천 신도심 상권에서 불과 3㎞ 거리인 광양시 덕례리에 광양 LF 아웃렛의 건설을 추진 중이다. 상인들이 걱정하는 건 그 규모가 초대형이기 때문이다. 건축 연면적이 10만㎡로 250여개의 의류 매장, 멀티플렉스 등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들어선다. 지역 상권 초토화를 우려한 상인들이 요즘 국회로, 감사원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유다.

얼마 전 충남 천안의 한 여학교 정문 앞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섰다. 여파는 불보 듯 뻔하다. 몇 안 되는 분식점과 빵집, 영세한 ‘밥버거’집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이미 소식을 듣고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이 학교 일대는 구도심 지역으로 이미 상권이 죽은 곳이다. 인근 상가 주인들도 울상이다. 세입자들이 못 견디고 나가서 점포가 비어 있으면 좋을 리 만무다. 

이 회사는 글로벌 경영을 꿈꾸고 있다. 

2018년 아시아 외식 브랜드 톱3가 목표다. 베트남에 200호점, 인도네시아에 30호점을 내고 중국과 카자흐스탄, 미얀마에도 진출해 있다. 그런 대기업의 골목 상권 잠식,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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