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
황혼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
  • 심억수 <시인·충북중앙도서관>
  • 승인 2015.07.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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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심억수 <시인·충북중앙도서관>

예부터 아내의 길은 매우 험난하고 어려웠다. 

결혼하면 여필종부라 하여 부모가 정하여준 배필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순종하며 살아야 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하였다. 그래서 시집온 여인은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으로 살아야 했다. 오로지 모든 인생을 시집을 위하여 살아야 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칠거지악이라 하여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못하며 행실이 음탕하거나 질투가 심하고 악질에 걸리거나 말썽이 많으며 도둑질을 하면 가차 없이 내쫓기었다. 

그러나 아무리 칠거지악에 드는 악처라 해도 삼불거가 있었다. 쫒아내도 갈 곳이 없거나, 부모의 상을 같이 치렀거나, 가난할 때 같이 고생하다가 부귀하게 된 때에는 내치지 않았으니 그나마 여인과 아내로서 조금은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요즈음 현실은 부부간에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헤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감히 아내에게 여필종부를 강요하는 남편이 있다면 한창 유행하는 간 큰 남자임이 틀림없다. 아내는 인생의 반려자이다. 옛날처럼 순종만을 강요한다면 의견 충돌이 잦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일이다. 

성격 차이라며 헤어지자고 할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적 체면과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보다 자아실현 주의가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남편이 요구하는 이혼보다 아내가 요구하는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전통적 가풍을 이어가는 종손으로 태어났다. 순종을 미덕으로 여필종부 하신 어머님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아내에게 동반자로서 인격을 존중하기보다는 나의 권위에 금이 갈 것 같으면 단호하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접근해오면 의식적으로 경계하였다. 

가장의 책임에서 오는 정신적 굴레를 혼자 참고 이겨내려는 아집에 사회적 체면과 겉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가부장적으로 달려온 인생 돌이켜보니 참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살아가는 아내에게 동반자로서 얼마만큼 노력하였는지 생각하며 주름진 아내를 바라본다. 허구 많은 세월 말없이 아내의 자리를 지켜준 주름살에 마음이 찡하다. 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해하는 아내가 고맙다. 

내 마음 가득 자리한 아내에게 마음의 편지를 써본다. 



그대를 만난 나는 행운입니다

그대가 나의 모든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사랑하다 먼 훗날 이 세상 떠날 때 

가장 먼저 그대가 떠오르도록

그대를 사랑하렵니다.

그리고

그대가 나의 임종을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그대를 만난 나는 행운입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해 보지만 아내가 나에게 베풀어 준 사랑 앞에 그 어떤 표현도 무색하리라. 함께 늙어가면서 서로 의지하며 작은 기쁨에도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서녘 하늘 노을처럼 황혼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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