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떼의 출현과 공생의 길
백로떼의 출현과 공생의 길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6.21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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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 <부장>

청주시 분평동 일대가 때 아닌 백로와 전쟁 중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야산에 백로들이 모여들면서 현재 서식하고 있는 백로 수가 어림잡아 천여 마리 정도라고 한다.

우윳빛 깃털이 아름다운 백로의 출현이지만 떼 지어 도심에 나타난 백로는 도시민들에게 반가울 리 없다. 소음에 악취까지 겹치면서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조용하던 일대는 백로의 울음소리가 들끓고 천여마리가 쏟아내는 배설물에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다. 더구나 백로가 떼 지어 서식하고 있는 야산이 학교 근처이다 보니 학생들의 수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급기야 학부모와 주민들은 백로떼를 떠나보기 위한 방법으로 나무를 베어내는 것까지 탄원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백로가 무슨 죄일까 싶기도 하지만 매일매일을 백로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주민과 학생들을 생각하면 결딴을 내야 하는 것도 거스를 수 없을 듯싶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백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나친 개발과 자본주의가 빚어낸 환경변화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옛 선조는 느릿느릿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백로의 모습을 보며 고졸한 선비 같다고 칭송했다. 그런가 하면 논에서 한유하게 사냥하는 모습에서 여백의 미를 발견했던 새도 바로 백로다. 그렇게 선조에게 사랑받던 백로가 현대인들에게 골칫덩이로 치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로들은 왜 갑자기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 불편을 가져오고 있는 걸까. 

이는 서식지로 대변되었던 백로들의 삶터를 되짚어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주지역에서 백로 서식지로 유명했던 곳을 꼽으라면 송절동이다. 까치내와 인근에 있는 송절동은 인가도 많지 않고 소나무도 많아 백로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수백 마리 백로가 서식하며 무심천 일대를 날아다녔지만 최근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서식지가 파괴되었다. 갈 곳을 잃은 백로들은 서식지를 찾아 무심천과 가까우면서도 나무가 조성되어 있는 분평동으로 이동해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삶터를 잃은 백로들이 도심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서 사달이 난 셈이다.

연유야 어찌 되었든 천여 마리의 백로가 도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문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백로가 서식할 대안지도 없이 나무를 베어내는 것도 생명에 근거해 보면 반생태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난제이긴 하지만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나무를 베어내면 백로는 사라지겠지만 나무가 사라진 삶의 공간은 삭막함으로 돌아올 것이고, 삭막한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태도시, 생명도시를 추구하는 지자체의 목표처럼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너나가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를 남겨주는 교육적 차원으로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린 백로가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서식지로 대처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해줘야 하는 책무감도 가져야 한다. 또한, 주민과 학생들이 불편함을 참을 수 있도록 설득하고 이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요즘 상생과 공생이 대세인 시대다. 함께하는 모토가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 속에서 과연 어떠한 묘안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개발주의와 자본주의가 빚어낸 현상임을 먼저 인식해야만 상생과 공생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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