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날들
잔혹한 날들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6.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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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최 준 <시인>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들도 논밭의 작물들과 함께 타들어간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건너온 전염병 메르스 소식이 뉴스를 도배하고, 이 정부 들어서 세 번째 바뀌는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국민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누가 총리가 되든지 그가 비를 내려줄 리 없고 메르스를 막아줄 수 없다. 오늘의 고통을 정치가 눈물 한 방울만큼도 위무해주지 못한다.

이게 다 하늘의 뜻인가? 대통령은 메르스로 줄어든 해외 관광객들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는 여행사나 관광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하라면서 여전히 경제논리만을 앞세우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당면 문제가 돈인가? 국민들은 돈만 있으면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는 단순한 존재들인가?

슬프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정치가들에게 나라를 맡긴 죄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져야 한다. 후회를 지속해야 한다. 그들에게 메르스는 어쩌면 세월호의 참사를 덮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 세월이 흐르면 다 잊히겠지. 우리가 아닌 그들은 본시 그런 존재들이었으니, 그들과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당대는 지나가면 그뿐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그들을 우리는 원하지 않았던 운명적인 국가라는 환으로, 의무감으로 책임지고 땀 흘리고 혼신을 다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짊어져야 한다는 절박함만으로 이런 의무감을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 나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이주할 권리도 없으면서 불만에 가득 차서 내가 태어났으니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를 감수해야 하는가?

왕후도 장상도 죽으면 모든 게 다 그만이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너나없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행복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울고 웃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어우러져 함께 사는 세상이다. 

아프리카가 불쌍한가? 이 근본적인 질문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베푸는 인정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이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다. 그 가난을 착취해서 부를 누리는 자들을 먼저 단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다 알면서 근본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고 선을 가장한 모든 노력들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누가 진정 불쌍한 사람들인가? 돈으로 살고 돈으로 도와주려는 세상은 마음이 아니다. 우리가 도와주려는 아프리카는 아이들이 불쌍한 게 아니라 그런 아이들을 낳은 어른들이 불쌍한 나라다. 착취당하고 그 착취를 당연한 듯이 챙기고 웃는 저들만의 세상을 구축한 악귀들의 세계가 아닌가?

제발, 웃기지 말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너무 우습다. 생을 다해 타인을 위해서 복무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소수의 그들이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곧 천상일 것이다.

국가가 대체 무엇인가? 권력을 쥐여 주었으면 옳게 써야지 그들에게 서비스 정신이란 도무지 없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의 당대를 맡긴 죄과 또한 우리 스스로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할 말이 없다. 역사는 그래서 늘 비전은 있었으되 줄기차게 불행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멀리 볼 필요 없다. 슬프게도, 작금의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와 하나 다를 게 없다. 망국을 향해 가는 여정이 왜 이리도 닮았는지 과학이 얘기하는 유전자를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핏줄이 정말 그런 거라면 이 땅에 태어난 운명적인 신세를 한탄할 수밖엔 없겠다. 

그나저나, 학수고대하는 단비는 대체 언제나 내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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