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새봄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3.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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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담 밑의 노루귀는 분홍빛 봄 웃음을 전한다. 아직도 싸늘한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계절은 봄이다. 벌써 골목엔 아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봄이 어디 아이들이나 들꽃에만 있는 것이랴. 모처럼 우리 집도 새봄맞이 준비를 한다.

지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집안 정리가 시작됐다. 지금 사는 집을 13년 전에 구조 변경을 하고 처음으로 내부 페인트와 도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방 여러 곳에 어수선이 널려 있는 세간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시작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지금까지 미루어 두었다.

다음주면 둘째 아들네가 유학을 가게 된다. 살림살이를 대부분 정리하고 남은 냉장고, 세탁기, 책과 책장들을 우리 집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하자면 어차피 살림 이동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도배만 하려했다. 그러나 창틀이나 문들이 흰 페인트가 찌들어 곳곳에 얼룩도 있고 누렇게 변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았던 페인트칠을 먼저 시작하게 됐다.

페인트 할 부분을 정리하다 보니 먼지 덩어리와 동전, 몇 해 전 해외여행 갈 때 숨겨두었던 아기 반지도 책꽂이 뒤쪽에서 나왔다. 가끔 보이는 곳만 했지 가재도구들을 옮기면서 하기는 쉽지 않았다. 얼마나 정리를 안 했으면 그렇게까지 되었는지 속수무책이다. 지금까지 집안살림과 직장생활, 교회생활, 취미생활을 병행하며 분주하게 보냈다.

남편과 나는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모처럼 일하는데 쏟았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힘은 들지만 즐거웠다. 온통 먼지 속에서도 내집일이니 피곤도 모르고 열심히 임했다. 저녁때는 마스크도 하지 않고 정리에 몰두하다 보니 먼지에 목이 컬컬했다. 병이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페인트 작업이 끝나자 하루건너 도배를 시작했다. 아침 8시쯤 도배사 한 분이 오셨다. 거실에 가득 보따리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더니 일할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것들 모두 밖에 내놓아야 돼요”라며 불만 섞인 투로 말을 한다. 잠시 후 팀원들은 장비를 들이고 도구를 허리에 차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남편과 나는 정신없이 먼저 도배를 마친 방으로 묶은 짐들을 옮겨 놓았다. 몇 가지는 밖에 내놓기도 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힘들지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층은 아들 3형제가 대학시절까지 보내고 외지로 나가 방마다 전문서적을 비롯해 이것저것 어수선하게 차있다. 그것을 밀치고 공간을 만들고 가득 쌓인 먼지를 제거하기가 힘겨웠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막내가 쓰던 기역자 방인데 그곳에는 곤충 박재한 것들, 전족 도구와 상자 등으로 발 디딜틈이 없이 가득하다. 더구나 시집올 때 목화를 넣어 이불을 해 주셨던 부모님 생각에 이불 겉감만 벗겨 낸 솜뭉치 몇 덩이도 그대로 있었다. 거의 창고로 쓰던 방이다.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자 벽, 창틀, 문 모두 깨끗하다. 그곳에 싹이 돋아날 것 같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에 가득했던 걱정이 사라지듯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깨끗한 벽을 바라본다. 그곳에 내 마음을 그리고 싶다. 새봄을 그곳에 그리고 싶다.

다음주면 할머니 집에서 처음 이틀밤을 자고 떠날 손녀들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새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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