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계 “조박사 부친 조각하려다 벌어진 실수인듯”
대낮에 횃불 들고 시위주도 … 유관순 열사 모습도 어색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순대거리 끄트머리에 있는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공원 한가운데 인물 군상(群像) 조각물이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10월 공원이 조성되면서 설치된 박모 작가의 ‘그날의 함성’이다.
유관순 열사(1902~1920)를 중심으로 9명의 인물이 태극기 등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그런데 왼쪽 맨 뒤의 양복 입은 중년 남성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나비 넥타이에 조끼까지 차려입고 구두를 신은 모습이 웃통을 벗거나 짚신을 신은 다른 시위자나 시골 장터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이 중년 신사의 모습은 병천 출신인 조병옥 박사(1894~1960).
그런데 왜 조 박사가 중년의 모습으로 1919년 4월 1일 일어난 아우내 만세시위 현장에 나타난 것일까. 당시 54세 나이로 시위를 주도했던 그의 부친 조인원(1865~1931)을 묘사하려다 벌어진 실수로 보인다. 나비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 심볼 마크인 조 박사는 아우내시위 당시 25세 청년으로 미국 유학 중이었다.
조각물을 제작한 박모씨는 “천안시 사적관리소 학예사가 유 열사 사촌언니(유예도)와 조 박사 부친을 인물 군상에 꼭 넣어야 한다면서 자료 소재를 일러주기에 참고해 만들었다”면서 “제작 후 사적관리소로부터 컨펌(확인)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씨가 조 박사 사진을 부친 조인원의 것으로 착각해 제작한 듯하다. 조인원은 유 열사, 유중무와 함께 시위자 중 최고형인 3년 징역을 받아 복역했으나 수형자기록표가 남아있지 않아 사진은 없다. 그는 유 열사의 작은 아버지 유중무와 절친한 사이로 함께 지역 감리교회 지도자로 활동했다.
향토사학자 임명순씨는 “조각물의 중년신사는 누가 봐도 조병옥 박사의 모습”이라며 “아예 그 자리를 비우던가 아우내 시위자 중 사진이 있는 다른 분으로 교체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 열사가 대낮에 일어난 시위 때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도 어색하다고 지적했다.
사적관리소 측은 “재고증 절차를 통해 오류가 확인되면 수정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매년 2월 말일 밤에 열리는 아우내봉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제역과 AI 발생으로 취소됐다. /천안 조한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