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모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
기자 모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5.02.24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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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지난해 연초 천안시청 브리핑실(기자실)에서 한 기자가 흘리듯 하는 얘기를 들었다. “시청 모 과장이 곧 명예퇴직하는데 천안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옮겨간다고 하더라.”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문화재단이 아무도 모르게 조직 개편을 진행하고 있었다. 2012년 재단 설립 때 전국 공모로 사무국장을 뽑더니 곧바로 본부장으로 ‘변칙 승격’시켜 사무국장직을 없앴는데 어떻게 또 뽑겠다는 것일까?

문화재단은 놀라운 일을 벌이고 있었다. 2013년 10월말 이사회서 조직개편안을 통과시키고 석달째 숨기고 있었다. 본부장을 재단 2급에서 1급으로 맘대로 올리고, 없어진 사무국장직을 부활시켰다. ‘밑장 빼서 올리고, 은근슬쩍 한장 보태기’다. 사기도박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당연직 문화재단 이사인 전종한 의원(복지문화위원장)은 이사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의회도 눈 뜨고 당했다.

언론은 문화재단의 변칙 개편을 질타했다. 그런데도 재단은 작년 5월 또 비슷한 일을 벌였다. 본부장이 최고직인 상임이사까지 겸하도록 했다. 이런 ‘멋대로 재단’은 현재 새 시장에 의해 개혁 수순을 밟고 있다.

기자실은 기자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기자 한명 한명은 정보를 몰고 다닌다. 정보들은 모여 영향력 있는 기사를 탄생시킨다. 기자는 시정(市政) 밀착 감시를 통해 세금이 유용하게 쓰이도록 유도해 시 발전을 이끈다.

기자들이 한군데 모이면 ‘껄끄러운’ 비판 기사는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자실을 부담스러워하는 집단이 있다. 부패하거나 나태한 공무원, 세금 거저 먹으려는 사업가, 뒤끝이 구린 정치인 등이다. 

반면 기자들이 모여있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하소연할 데 없거나, 널리 알리거나 자랑할 일이 있는 사람이다. 특히 시는 특정 사안에 대해 긴급하게 널리 알리고자 할 때 기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손쉽다.

정부기관, 지자체, 교육청, 경찰서 등은 기자실을 두고 있다. 기자가 궁극적으로 해당 기관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기사는 단순한 브리핑(brie-fing)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청의 귀중한 공간이 시정을 간추려 설명하는 자리로 전락해선 안 된다. 시민들에게 좀더 정제된 고급 정보를 전하고, 가치있는 뉴스를 생산하는 장소여야 한다. 시민의 알 권리를 총족시켜주는 공간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시민들은 시가 취재 편의 제공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기자실에선 각종 정보가 모여 뉴스 가치를 평가받는다. 격의 없는 토론이 오가고, 가끔은 언성을 높이며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곳에 어떤 권력, 어떤 불순한 세력도 끼어들 수 없다. 

기자실은 올바른 기자를 키우는 곳이기도 하다. 갓 기자생활을 시작한 초년병은 선배들의 토론과 기사를 보면서 기량을 갈고 닦는다. 기자 양성에 별도의 매뉴얼은 없다.

기자실에 성역(聖域)은 없다. 요즘 천안시의회가 화두다. 친형 사업을 돕기위해 동분서주하는 시의원, 중국의 아파트 판촉행사에 시립무용단을 이끌고 간 시의원, 세금으로 명절 선물 돌린 시의회 의장. 지난해 초엔 전임 시장은 ‘모 시장 출마후보를 지인들에게 소개해 주고 다닌다’는 기사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성 서한을 받았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한명의 기자에 의해 밝혀질 때도 있지만 여러 기자의 협력 취재로 드러날 때가 많다. 이러니 기자들이 모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구린 데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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