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하기 짝이 없는 대형마트 영업규제 위법 판결
고약하기 짝이 없는 대형마트 영업규제 위법 판결
  • 조규호 <서원대 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4.12.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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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조규호 <서원대 경영학과 교수> 
 

지난 12일은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역사에 또 하나의 어이없는 판결이 추가된 날이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장석조 부장판사)는 롯데쇼핑과 이마트, 홈플러스 등이 서울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 취소소송에서 영업제한이 적법하다고 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측의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 일수 부과 처분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마트, 즉 ‘매장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의 식품, 가전 및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인데 이들 원고 측의 대형마트들이 이 규정에서 말하는 ‘직원의 도움 없이 소매하는’ 요건에서 볼 때 소비자들의 구매 편의를 돕기 위해 점원의 도움을 제공하기에 해당 사항이 안 되어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것이고 이들 점포가 지자체에 대형마트로 등록되어 있지만 이것이 법령상 대형마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하자를 치유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각 지자체는 공익적 규제를 허용한 유통산업발전법을 근거로 월 2회의 의무휴업제와 자정부터 오전 8시 내지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며 대형마트를 규제해 왔었다. 

이번 판결은 참으로 고약하고도 위험한 법리 해석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법문에 표현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라는 것은 필자와 같은 소매유통 분야 전문가가 볼때 ‘점원의 도움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점포’로 넓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쇼핑의 편의를 위해 점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은 무인점포가 아닌 이상,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판결은 유통산업발전법의 법적 취지가 유통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확산 일로의 대형마트 등을 공익적 차원에서 규제하는 것을 합당하게 규정하고 있는 사실을 망각한 채 본질적인 법의 문제가 아닌 법 조항 문구에 노출된 약점을 이용한 고약한 판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필자의 최근 대형마트 관련한 연구에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전통시장 고객들은 물론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 역시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의무휴업일과 영업시간 제한)에 대해 반대하는 비율 19.6%보다 찬성하는 비율이 57.9%로 더 높게 찬성의견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대형마트 고객들은 정부의 전통시장 보호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훨씬 높은 긍정 의견(긍정 응답 66.3%, 부정적 응답 11.5%)을 보였다. 다시 말해 대부분 지역의 소비자들은 영업규제에 따른 쇼핑 불편을 감수할 수 있고 대형마트의 일방적인 공략과 확산을 막아 퇴락 일로에 있는 전통시장과 지역상인을 보호하여 대형마트와 이들 간의 상생적 존립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상의 규제가 우리가 동의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되고 맞벌이 부부 등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구매 편의를 막고 있다는 판단에서 양보할 뜻이 없다면 차라리 위헌제청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번 판결은 법은 물처럼 양심과 상식이 흘러야 하고 강자는 법이 없어도, 오히려 법이 없는 상황에서 더 힘을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기에 법은 약자를 위해 최소한의 공정을 목적으로 한 최후의 보루라는 법의 존재 관점에서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할 수가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기자불립(企者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발끝으로서는 사람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번 판결과 같은 부자연스러움은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의 역풍과 같은 역효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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