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
도토리묵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11.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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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이라고 한다. 도토리묵을 쑤었다고 먹으러 오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갓 썰어낸 묵에 간장을 얹어 먹으면 쌉쌀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오래도록 물리지 않는다. 배가 불러서 허리띠를 풀고 먹은 일이 수차례일 정도로 올 가을은 도토리묵에 빠져 지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상수리나무 도토리로 구슬치기를 하던 생각이 난다. 도토리를 감싸고 있던 깍정이는 소꿉놀이를 할 때 그릇으로 썼다. 간장종지 같이 생겨서 흙을 담기에 아주 적당했다. 도토리는 주워서 반찬으로 하고 깍정이는 그릇으로 쓰며 놀았던 것이다.

그러나 먹기만 했지 정작 줍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도토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떤 게 도토리고 상수리는 또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몰라 도토리묵을 먹으면서 지인과 계속 실랑이를 벌였다. 이름은 숱하게 들어왔지만 떡갈나무와 도토리나무에 대해서조차 확실히 아는 게 없으니 뚜렷한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푸짐하게 먹고 집에 돌아와 도토리에 관한 자료를 뒤져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본 도토리에 관한 책을 펼쳐 보니 이상배 선생님이 쓴 “도토리나무 육형제”라는 내용이 나왔다. 그 책을 보면서 그래 맞어, 맞어 하면서 저녁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토리의 종류는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도토리, 갈참나무와 졸참나무도토리, 그리고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도토리 등 여섯 가지다. 친구와 그 중 어떤 도토리로 쑤어야 맛있는지를 이야기 했는데 지금 보니 우리 모두가 틀렸다. 선생님의 책에서는 열매가 가장 작은 졸참나무 도토리가 떫은맛이 덜하고 날 것으로 먹을 수도 있는 건 물론 묵을 만들면 제일 맛나서 ‘꿀밤나무’라고 부른다는데, 정작 그 이름을 몰라 실랑이를 벌였다는 게 부끄럽다. 

이제부터는 산책을 할 때마다 숲에 머물며 그 멋에 빠져들 것 같다. 가까운 산에 운동을 하러 가면서도 각기 다른 종류의 도토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도토리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확실히 책을 보면서 알았다. 나 자신 얼마나 무심히 살고 있는지 확인한 느낌이다.

이상배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 도처의 숲속은 물론 온갖 나무의 생태를 알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난다.

대략 여섯 가지 종류의 도토리나무가 있음을 알고 나니 특별히 내일 아침 운동을 갈 때는 자세히 숲을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오르는 산이고 늘 보는 나무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게 보았는지 숲의 오묘함에 또 한번 놀랐다.

신통하게도 들판을 보고 열리는 도토리나무가 오늘 따라 친근해진다. 산열매인 도토리와 들판의 곡식은 전혀 다른 조건 때문에 추수할 때마다 소출이 달라진다. 곡식이 풍년이면 도토리는 덜 열리고 반대일 때는 오히려 많이 달려 구황식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나가 흉년이면 남은 게 풍족해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한다. 단지 구황 식품이었던 게 이제는 오리지널 웰빙식품으로까지 등장했으니 배고플 때 먹던 음식이야말로 진정한 건강식이었다.

지인이 도토리가루로 전을 부쳐 먹자는 연락을 해 왔다. 다분히 쓴 맛인데도 먹을 만한 데서 쓰디 쓴 삶도 용납할 여지가 있음을 본다. 살면서 쓴 맛에 익숙해지는 바람에 더욱 좋아하게 된 도토리, 벌써부터 독특한 그 맛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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