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좋아요'만 있고 진정한 '나'는 없다
페이스북 '좋아요'만 있고 진정한 '나'는 없다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4.11.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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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 의견개진 꺼리고, 기사 칼럼 공유 등이 대세
직장인 서동길(26)씨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생각을 직접 글로 적는 것보다 적당한 기사나 칼럼의 '공유'나 '좋아요'를 눌러 자신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편하다.

서씨는 "요즘엔 친구, 회사 사람, 교수님뿐만 아니라 내 '친구의 친구'까지 내 글을 다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다"면서 "오픈된 공간에 내 취향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게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고시생 진희성(30)씨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정부 정책 비판 기사를 공유하고 짧은 논평을 달아 자신의 견해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진씨는 "독일의 한 하천 전문가가 우리나라 4대강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의 기사를 '꼭 읽어보시길'이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공유했다"며 "카카오톡도 검열하는 시대다. 예전에 한 기업에서는 면접 대상자의 페이스북 뒷조사를 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지 않냐"며 직접 자신의 생각을 쓰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병원 연구원 이세진(40·여)씨는 언젠가부터 기사를 읽다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을 보면 기계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따로 정리해야 하는 부담감과 수고스러움을 피하고 싶어서다.

이씨는 "다른 사람들이 충실하게 작성한 글이나 기사 등을 공유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나를 보여줄 수 있다"며 "내가 직접 한 말이 아니기에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 오픈된 공간이란 인식 강해 개인 주장 표출 꺼려

위와 같은 사례들은 사람들이 사회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꺼리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적당히 기사나 칼럼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눌러 자신의 견해를 표현한다.

과거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소소한 감상을 적거나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녹여낸 기사나 칼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해당 내용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지난 4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SNS를 사용하는 직장인 492명을 상대로 SNS 활용 수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48%가 넘는 응답자가 '다른 사람의 게시글을 공유한다'고 답했다.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답변은 약 20%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카카오톡 사찰'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 자신을 드러내는 기회가 많아질 수록 사생활을 지키려는 의지는 더욱 강해진다"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드러내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 간 페이스북을 관리하다가 지난달 계정을 삭제한 취업 준비생 김현아(26·여)씨는 "친구가 내 게시물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면, 친구의 친구도 내 게시글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내가 올린 게시물을 누가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잘 서지 않아서 사진이나 글을 마음대로 올려도 되는 건지 가끔 신경 쓰였다"고 전했다.

양 교수는 "누구나 의도적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여러 인맥으로 얽힌 SNS상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보여줬다가 상처 받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좋아요'나 '공유'를 통해 나를 은근히 드러내는 방법을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2년 SK텔레콤에서 조사한 'SNS 이용 현황'에서도 80% 이상의 응답자가 SNS의 부정적인 면으로 "원치 않는 사람에게 노출"을 꼽았다.

◇ '좋아요' 홍수 속, 새로움 사라지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좋아요'로 반복되는 비슷한 게시글에 염증을 느끼거나 '나만의 공간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한다.

서울대 김상혁(24)씨는 "친구들이 요즘 어떻게 사나 보려고 오랜만에 페이스북 접속했다가 친구들이 공유해둔 비디오 클립이나 기사, 웹툰 등으로 꽉 찬 페이지들만 휙휙 넘겨보다 나왔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지현(25·여)씨도 "예전에는 페이스북이 내 생각을 담아줄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각종 글과 동영상 등에 마구 침해 당한 느낌이라 가끔 화가 난다"고 말했다.

3년 전 페이스북에 가입한 손윤선(26·여)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 생각을 끄적거리던 '싸이월드' 일기장이 그립다"고 전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요즘 한국사회는 문화·정치·사회 등 모든 측면에서 뚜렷하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같은 것만 반복하는 지리멸렬한 상황"이라며 "SNS라는 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임에도 자기를 직접 드러내길 꺼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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