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 길을 잃다
진도에서 길을 잃다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10.28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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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남쪽을 향하던 발걸음이 진도에 닿았습니다. 진도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울둘목의 물살은 거셌습니다. 12척의 배로 130척의 일본 전함을 격파했던 명량해전의 현장에는 해협을 바라보며 호령하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있고, 그 해협을 가로질러 제1, 2 진도대교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진도대교를 건너면 해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진도전망대가 우뚝 서 있습니다. 물살은 그 옛날과 변함이 없는데 물살을 둘러싼 풍광과 인심은 세월을 따라 변해 온 것 같습니다. 

처음 길을 나설 때부터 진도 팽목항에 갈 것이라는 목표를 가졌었지만 내가 정말 그 길을 걸어서 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때문에 당당하게 어디까지 걷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진도대교를 건너면서 목표지점에 거의 다왔다는 설렘과 안도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진도대교에서 팽목항까지는 35킬로미터입니다. 팽목항을 향해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져 가슴이 턱 막혀왔습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이 더 걸리더라도 진도의 서부해안선을 따라 빙 돌아서 팽목항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진도대교를 건너 서부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닷가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매어놓은 진돗개만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흘낏 쳐다보며 짖을 뿐입니다. 그렇게 고즈넉한 길을 네 시간 가까이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진도대교를 건너며 바라보았던 진도전망대가 또다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설마하고 눈을 의심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곧 해는 질 텐데 다시 서부해안도로로 돌아 갈수는 없었습니다. 진도읍을 향해 걷기로 마음먹었는데 발걸음은 무거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목표에 거의 다왔다는 안도감, 20여일을 걸어오면서 쌓여온 걷기에 대한 자만심, 섬이니까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 되겠지 하는 안일함 때문에 길 검색을 자세히 하지 않았던 탓입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2차로에서 4차로로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18번 국도를 쌩쌩 달리는 차들과 함께 걸어야 했고, 난생 처음으로 차가 달리는 터널 속을 걸었습니다. 진도터널 620미터를 지나는 시간은 10분정도에 불과했지만 속도를 내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터널 안을 진동시켜 울리는 굉음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총알이 귓가를 스치는 것 같은 공포를 줍니다. 그리고 터널 안에 가득 찬 매연과 먼지는 숨을 멈추게 합니다.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덜컹거리는 좁은 비상통로를 걸었던 그 10분 동안의 공포는 아마 길을 걸었던 20여 일 동안의 공포를 다 합해도 그만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해가 진 깜깜한 도로를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전조등 빛을 받으며 걷다가 눈앞에 나타난 진도읍내의 불빛은 망망한 바다에 떠있는 등대불과 같았습니다. 

팽목항 등대 방파제에는 노란 깃발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부낍니다. 자식이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놓은 상위에 무심한 가을 햇살이 내려쬡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열 사람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열사람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더 먹먹해지고 무거워지는 마음은 왜 일까요. 바다로 난 길이 있다면 차라리 더 먼 길을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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