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머문다
그곳에 머문다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10.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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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오늘따라 날씨는 어쩌자고 이토록 좋은지! 

문밖에 나서니 온통 붉다. 하얀 햇살에 드러난 곱게 채색된 가을이 맑고 풍요롭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그림이다. 보도에 내려앉은 가로수 낙엽 곁에 다가간다. 바람에 날리어 멀어져가는 가을소리를 듣는다. 기나긴 동안거(冬安居)귀로(歸路)에 접어든 고엽(枯葉)과의 고별(告別)이다. 

경제적 성장에 따른 삶의 질이 향상된 일상생활패턴의 변화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그중 직장의 근무일이 주5일제로 된 이후 많은 근로자는 여유로운 주말을 갖게 되었다. 주일 전후에 국경일로 정한 휴일이 연이어 있게 되면 연휴로 이어져 넉넉한 여가시간을 즐긴다. 

여느 해도 그래왔듯이 우리 고유의 가을은 높고 맑은 하늘을 자랑하고 있다. 어느 때나 나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마음이 내키면 어느 곳이고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많아진다. 빡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가까운 교외에만 나가도 풍성한 자연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곳도 걷고 싶은 길도 많다. 가을과 동행이 되어 풍요로운 가을을 걷는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그는 20세기 최고의 장인(匠人)으로 미국국적의 자연주의 건축가다. 그는 밝고 빛나는 빛, 맑은 공기 그리고 좋은 조망을 건축에 끌어들여 건축이 자연에 순응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였다. 

그가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간과 유기적(有機的) 관계를 지닌 자연의 귀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건축이 고전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자연주의 성향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고 구체적이며 사실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대상을 자연에서 가져와야 된다는 것이 그의 건축적 사고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자연과 어울린 건축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여유와 매력이 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도덕적 가치가 기본이지만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본질(本質)이 가치기준이 된다. 건축이 자연과 가까워야 할 이유이다.

자연은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최고의 스승이다. 앞으로의 아름다운 건축은 자연으로 회귀(回歸)하는 건축이 될 것이다. 건축이 자연에 가깝게 다가가면 그곳에는 기쁨이 있고 예술과 건축(Architecture)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은 자연과 잘 어울린다.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많은 곳에서 자연과 어울린 아름다운 건축을 만날 수 있다.

길을 걸으며 밝은 빛에 드러난 아름다운 건물을 만나면 가슴이 띈다. 아름다운 건축이란 오래된 친근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많은 날을 보내고 잠시 뒤돌아보니 건축과 같이 산 날도 꽤나 오래되었다. 지난날 어렵고 힘들 때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기다리고 애썼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건축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고 건축이 삶의 일부가 된 것은 나에게는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다.

미국 위스콘신(Wisconsin)주에서 태어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노을빛(natural orange sunset color)을 드리우고 있는 애리조나(Arizona)주에 영면한다. 황혼녘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의 품으로 회귀하는 장인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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