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행복
노후의 행복
  • 김중길 <충청북도노인지도자대학 학장>
  • 승인 2014.10.27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권익위원칼럼
김중길 <충청북도노인지도자대학 학장>

요즘 세상의 화두는 ‘젊은이의 일자리’와 ‘노인의 건강한 행복’으로 요약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난제다. 정치와 기업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젊은이들이 평생직장으로 알고 신명을 바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요즘의 우리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렵게 공부해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일당제 아르바이트나 임시 일용직 현장에 나가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는 젊은 인재들이 너무나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가족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근심과 걱정 또한 태산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바로 그런 사회가 복지가 꽃피는 사회다. 젊은이가 신바람을 내면서 즐겁게 일하는 사회 속의 노인들, 그들 역시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노인의 행복은 그가 지닌 가치관과 세계관이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신라 48대 경문왕과 관련한 삼선설(三善說)에 대한 일화가 있다. 화랑 출신 왕족 김응렴은 그의 삼선설이 인연이 되어 부마가 되고 왕위에까지 올랐다. 또 공주와 결혼할 때에도 겸허과욕(謙虛寡慾)하게 삼복설(三福說)에 따름으로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된 이야기다.

  헌안왕은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임해전에서 관국연(觀菊宴)을 베풀어 군신들과 더불어 즐겼는데, 그 자리에 15세의 화랑 미소년인 응렴도 참석했다. 임금이 눈에 띄는 어린 응렴을 불러 “너는 화랑으로서 유람수학을 하며 무엇을 배웠느냐?”라고 묻자 세 가지 선행을 배웠다고 대답했다. 그 세 가지 선행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자, “마음씨와 행동이 겸손해서 남의 앞에 먼저 나서지 않고 남의 밑에 처하는 것이옵고, 사치스런 의식을 취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로 만족하는 것이옵고, 남을 업신여기거나 억압하지 않는 온화한 인품을 지니옵는 것 등 셋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응렴을 귀히 알아본 임금께서 그를 부마로 간택해 맞이했다.

 이 고사가 우리 시대 노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다. “현직에서 무슨 자리에 있던 내가, 경험과 학식이 당신보다 현저한 내가, 아직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내가 너희와 동류가 될 수 있느냐?”라는 식으로 자기를 과시하지 못하거나 자기의 우월감을 뽐내지 못하여 안달하는 노인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 그들이 함께 있는 자리는 언제나 불화하고 불편해 모두를 불쾌하게 만든다.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경륜이다. 달관의 경륜, 초월의 경륜, 균제의 경륜이다. 취직 못 하고 결혼 안 한 자식을 호통치는 노인, 젊었을 때만 못한 남편이나 아내를 구박하는 노인, 과거 이력에 학력이나 지위가 낮았던 친구를 업신여기는 노인, 베풂을 죄악시하는 노인 등 부정적 가치관에 구속돼 있는 이런 노인들에게 행복은 없다. 그들이 품고 있는 인생관이 그들의 행복을 옭아맸기 때문이다. 달관, 초월, 균제의 미덕이 꽃 필 때, 그들의 노후 행복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앞의 고사에서 언급한 응렴은 선왕이 붕어하자 보위를 계승했다. 왕이 된 지 3년이 되던 10월에 난데없는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다시 피어 재봉춘(再逢春)의 상서로운 징조를 보였고, 동지섣달이 되어도 눈이 오지 않으니 덕 있는 임금을 하늘도 알아주었다. 이렇듯 오늘의 우리 노인들이 달관, 초월, 균제의 덕을 세상을 위해, 젊은이를 위해,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 간다면 분명 고목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행복한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