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판결이 남긴 메시지
원세훈 판결이 남긴 메시지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9.11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에… 一筆
결국 원세훈이 만기 출소 이틀만에 다시 구치소로 가는 참사(?)는 면하게 됐다. 11일 서울중앙지법이 공직선거법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징역 2년 6월과 집행유예 4년, 그리고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함으로써 그동안 2년을 끌어오며 숱한 사연들을 만들어 낸 이 사건은 일단 마무리된 셈이다.

19대 대선 직전인 지난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의 오피스텔에서 시작된 이 사건의 쟁점은 대략 두 가지다. 원세훈이 구체적으로 직원들에게 대선개입을 지시했느냐와, 당시 국정원의 심리전단 활동을 과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두 가지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그 파장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지난 7월 14일 결심공판에서 원세훈의 지시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그런데 이날 재판부는 아주 절묘한 판단을 제시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과 트위터 활동이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주문을 덧붙였다. “특정 여론조성을 목적으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직접 개입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것으로 죄책이 무겁다.”

이를 현실적 시각으로 풀어 해석한다면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이미 사실관계가 다 드러난 것이지만 국정원이 심리전단을 이용해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 등을 비판하고 반대한 것은 맞더라도 그렇다고 이것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리전단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정치관여 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지만 원세훈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거나 선거에 개입하라는 지시는 안 했다는 결론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야당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이 사건은 고비고비마다 참으로 민감한 ‘이벤트’를 양산하며 국민들의 법 의식에도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 수사 당시 선거법 위반혐의 적용에 반대한 법무부 장관에 맞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난데없이 터져 나온 혼외아들 문제로 졸지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은 보고도 없이 일을 처리한다는 이유로 직무에서 배제되자 국정감사를 통해 수사 과정에서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 때 충북에서 경찰의 수장과 변호사로 활동했던 김용판과 권은희는 이 사건의 초동수사를 맡아 상하관계를 유지하다 돌연 서로 이전투구의 다툼을 벌이다가 한 사람은 야인(김)으로, 또 한 사람은 국회의원(권)으로 변신했다.

이 와중에 원세훈은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나는 60세가 넘어서 인터넷을 잘 알지 못하고 트위터는 써 본 적도 없어 심리전단 직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조차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다”고 말해 그야말로 딱딱하고 각진 사건에 그나마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어쨌든 예의 정치적 사건이 그렇듯 이번 원세훈 판결 역시 최종 판단은 국민 몫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민들에게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에 대한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고민케 하는 특단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정원의 대다수 요원들은 나라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음을 국민들은 잘 안다. 그들은 조직의 신념에 따라 결코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고(No pride), 결코 변명하거나 설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No explain),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불평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면서(No complain),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이 수행하는 업무와 역할은 항구적이고 영속적이어야 하며 그래야만 사막에서 동전을 찾는 것처럼 전혀 무(無)에서조차 예측가능한 정보를 얻어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관되어야 할 국가정보기관이 지금까지 그랬듯 정권에 휘둘리거나 외풍을 타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기관의 심장부까지 압수수색당하는 비운은 앞으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번 원세훈 파문이 남긴 교훈이라면 부인하지 않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