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첩을 펼치며
편지 첩을 펼치며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06.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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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짐 정리를 하다 오래된 편지 첩을 발견했습니다. 해묵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편지 첩을 펼쳤습니다. 편지 첩의 주인공은 결혼전 날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워온 저의 소울메이트(soulmate)입니다. 편지를 읽다 보니 그 친구가 목메게 그리워 친구란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친구란 오래 두고 정답게 사귀어온 벗’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까운 벗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이가 같은 또래이거나 어린 시절을 함께 뛰어놀며 자란 배꼽 친구일 수도 있고,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가까운 벗이 되기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굳이 동갑이 아니어도 마음만 열면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지 첩 친구 말고 나에게 마음이 통하는 다른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나의 반쪽을 떠올립니다.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를 이루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라고 사람인(人)자인 한자(漢字)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남편은 가끔 나에게 “당신은 나의 마누라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친구이기도 해”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물론 나에게도 남편은 가장 든든하고 소중한 벗입니다. 남들은 남편이, 아내가 무슨 친구냐고 하겠지만 나의 좁은 소견은 다릅니다. 귀한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다투기도 하고 때론 안 살 것처럼 티격태격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들여가며 살아가는 게 부부인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서로 마주 보며 눈빛, 몸짓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소중한 벗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나에게도 좋은 벗들이 있습니다. 많지는 않아도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고 이해해주며 서로 보듬어 줄 수 있으면 소중한 벗이지요. 굳이 “너는 나의 진정한 벗이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진실하다면 은은한 향기가 배어 나와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이룰 것입니다.

예전에는 우정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보물인 줄 알았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참된 우정인양 허세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일년 삼백육십오일 날마다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친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참된 우정의 도리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친구와의 만남과 헤어짐이 잦아지면서 내가 행했던 행동과 마음은 허상과 집착임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벗은 집착하지 않아도 참된 우정을 주장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은은한 향기를 품게 되는 것임을 나이를 먹어가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어느 누구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전화가 아닌 예전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에게 그립고 보고 싶다는 손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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