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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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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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이'를 기다리는 다섯 손가락
이 삼 우 <음성 하당초 교사>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란 말이 있다. 그만큼 모두 다 소중하다는 말이겠지. 나는 매일 아침마다 깨물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다섯 손가락을 만나기 위해 백마령 터널을 지나 한금령 고개를 넘어 내가 몸담고 있는 하당초등학교로 간다.

교육경력 16년 만에 처음으로 1학년을 맡게 되었다. 고학년만 맡아 가르치다가 1학년을 맡게 된 것이 부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학년 선생님들 하시는 걸 잘 봐둘걸….'

입학식장을 꾸미는 것부터 선물 사서 포장하기, 아이들 예쁜 이름표 만들어 코팅하기, 사탕목걸이 만드는 것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마치 내가 1학년이 된 기분이었고, 그동안의 교육경력은 다 물거품 되어 사라진 것처럼 해야 할 일들이 낯설어 신규교사처럼 허둥댔다.

입학식 날. 한 명이라도 더 와주었으면 했지만 정말 입학생은 고작 다섯 명이었다. 그것도 남자 아이는 한 명도 없는 여자아이 다섯 명. 선생님까지 여선생님이니 말 그대로 여인 천하다. 잔뜩 멋부리고 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 못지않게 깔끔하고 세련돼 보였지만, 아들 둘만 키운 나는 긴 머리의 여자아이들을 보는 순간 걱정부터 앞섰다.

'애들이 머리 묶어달라고 그러면 어쩌지'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누구하나 뒤처지는 아이도 없고, 스스로 할 일은 혼자서 잘 해결하는 것이 나이보다 의젓해 보였다. 정말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다섯 손가락'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섯 손가락처럼 늘 붙어다니면서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붙여준 이름이다. 아이들도 다섯 손가락이란 이름을 좋아했다. 공부시간에는 다섯 명 모두가 전부 발표하고도 남는 시간 때문에 이 얘기 저 얘기 시시콜콜한 집안 얘기 등을 정겹게 나눈다. 때로는 역할극을 꾸며 해보기도 하면서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다섯명은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친하다. 다섯 손가락 이름에 맞춰 엄지와 검지, 중지, 약지, 새끼로 할일을 정해주었다. 역할을 정해주니 책임감 있게 다섯 손가락의 할 일을 모두 잘 해낸다. 한사람이 웃으면 모두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고, 누구하나 다치면 큰일이나 난 것처럼 나머지 넷이 쪼르르 달려와 걱정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마치 다섯 요정처럼, 천사들처럼….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반에서 제일 작고 여려 보이는 혜진이가 서운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선생님~ 우리 반에는 남자친구 없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은 도둑질하다 들킨 양 뜨끔했다. 그러잖아도 남자 친구 없이 생활하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어느 정도 서로 적응이 되니 뒤늦게 남자 친구 없는 것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원래는 남자 아이 한 명이 입학할 예정이었는데, 여자아이들 다섯에 남자아이 혼자만 입학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고 한다. 그 바람에 우리 아이들은 남자 친구 구경도 못하고 짝이 안 맞아 매번 선생님도 해야 짝이 맞는다고 내 손을 잡아끌곤 한다. 남자친구를 만들어 데려올 수도 없고…….

"얘들아! 우리 책상하나 더 갖다놓자."

아이들이 안 써서 교실 구석에 있는 책상을 아이들 곁에 가져다 놓았다.

"애들아! 이 자리는 투명이 자리야."

"투명이요"

"그래. 투명이. 투명이는 남자면 좋을까 여자면 좋을까"

"남자로 해요. 남자친구가 없잖아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우리 반 남자친구 이름은 투명이다"

교실엔 투명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임자가 없는 빈 책상과 의자였지만 투명이 자리라는 말에 '혹' 했는지 놀이할 때고 게임할 때고 진짜 남자 친구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투명이의 효력은 한참 동안 지속됐다.

조만간 60명 이하 시골 학교를 통폐합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당도 내년엔 통폐합 대상 학교가 될 가능성이 많다. 시골학교 통폐합문제는 경제논리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없는 시골은 지금보다 훨씬 황폐화되어 버릴것이고 그걸 회복하기는 어렵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운동장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싫고 벌써 마음이 쓸쓸해진다.

"선생님, 투명이 안와요 언제와요 투명이가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많은 아이들이 전학와서 시골이 더 활기차고 생동감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꿈이 현실로 되기를 다섯 손가락 아이들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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