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복사꽃
송찬호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 어둠 속에서 더 어둡게 복면을 한 나무들이 길을 막아서고, 나뭇가지마다 올라 앉아있던 무사들이 후드득 뛰어내려 포위합니다. 도원의 세계를 무심히 지날 수 없다고 꽃 비로 단단히 발목을 잡아맵니다. 숨 막히는 봄의 전율이 어찌 복사꽃으로만 오겠습니까. 이맘때면 우암산을 빙 두른 벚꽃길도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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