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아름다운 세상은
마흔일곱, 아름다운 세상은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4.03.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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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天下(천하)에 有道(유도)하면 却走馬(각주마)가 以糞(이분)하고, 天下(천하)에 無道(무도)하면 戎馬(융마)가 生於郊(생어교)니라.

禍(화)는 莫大於不知足(막대어부지족)이요 咎(구)는 莫大於欲得(막대어욕득)이니 故(고)로 知足之足(지족지족)이야말로 常足矣(상족의)니라.

 

세상이 바르면 전쟁터를 달리던 말이 똥수레나 끌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군마가 길섶에서 새끼를 낳는다./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얻으려 욕심부리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만족을 알아 넉넉함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으뜸되는 넉넉함이다.

 

운동선수들을 봅니다. 훌륭한 몸에 놀라운 힘과 기술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저 사람들이 힘으로 전쟁을 하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적진을 누비는 장수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니 저렇게 운동장에서 또는 경기장에서 힘을 겨루는 것으로 자신의 직업을 삼아 살아간다는 것을 봅니다.

물론 장수노릇을 해야 할 사람들이 경기장에나 있으니 도덕경을 잘못 적용한다면 ‘지금이야말로 태평성세’라고 할 수도 있고, 이것은 몹시 위험한 세상읽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전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경제를 놓고 벌이는 새로운 전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고 이런 전쟁은 전쟁터를 따로 갖지 않으므로 희생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는 것. 그런데 단지 운동선수들이 그렇다고 하여 지금을 태평성세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세상을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옛 늙은이는 생명의 정의와 정의에서 비롯된 조화와 상생을 꿈꿉니다. 특별한 영웅이 있지도 않고 힘없다고 하여 업신여김을 받지도 않으며 그저 모두가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제 가락에 맞춰 춤을 추며 제게 주어진 생명을 제대로 살다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말하는 겁니다.

却走馬(각주마)나 戎馬(융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터에서 훌륭하게 쓰이는 말이라는 것쯤은 쉽게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을 내닫는 것이 멋지게 보일지 모르지만 참으로 멋진 것은 그저 거름을 퍼나르는 수레를 끌고 때 되면 먹고 때 되면 새끼를 낳으며 살아가는 곳이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것이 옛 늙이의 말입니다.

그런 말이나, 사람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거기서 수없는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생기는 전쟁이라는 것이 정서적 또는 정신적으로 허기진 사람들의 부질없는 욕심 탓이라는 것. 그러니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知足之足(지족지족)이야말로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기반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 배가 고픈데도 자신은 지금 배가 부르다고 생각하는 환각은 넉넉함이 아닙니다. 때에 이르러 자신에게 오는 모든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본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知足之足(지족지족)이라고 한다는 점을 살필 줄 알면 ‘족함’이 무엇인지는 누구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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