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 슬로건과 민선 충북 1
도정 슬로건과 민선 충북 1
  • 김기원 <편집위원>
  • 승인 2014.03.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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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기원 <편집위원>

바야흐로 민선 5기가 서산에 지고, 민선 6기가 목하 산통 중이다. 어떤 옥동자를 낳을지, 순산일지 난산일지는 6.4지방선거의 과정과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선거 때가 되면 선거판을 감칠 나게 하는 슬로건이 등장한다.

입후보자들의 철학과 비전을 함축하는 슬로건은 상품광고 카피보다 강렬하고 뜨겁다. 슬로건이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표심에 영향을 주고, 당선되면 곧바로 도정의 핵심가치로 투영되니 당연지사다. 하여 민선5기까지 역대 도지사들의 도정 슬로건을 재조명해 본다.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이므로.

민선 1기는 1995년 임기 3년으로 출범했고, 도민들은 충북호의 초대 선장으로 음성 출신의 주병덕 지사를 선택했다. 그는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해 치안정감인 경찰대학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큰 덩치와 잘 어울리게 ‘힘 있는 충북 건설’이란 기치를 내걸고 당선됐다.

충청도 핫바지와 멍청도라는 말이 선거판을 달구던 때라 “힘 있는 충북 건설”이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했고, 민선 1기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주지사는 그렇게 충청지역을 풍미하던 JP(김종필)와 자민련 바람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으나, 얼마 후 ‘힘 있는 충북’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그러나 임기 내내 ‘힘’의 개념과 철학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실제 그 힘을 뒷받침할만한 그럴듯한 정책이나 사업이 없어, 도력을 키워야 충북이 산다는 명제를 숙제로 남기는데 만족해야 했다. 특히 도정에 대한 사전 공부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공천 받고 도백이 된 터라, 도정 전반을 파악하는데 1년 이상 걸렸으니, 임기 3년은 그가 뜻을 펴기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1998년 드디어 임기 4년의 민선 2기가 출범했다. 여당 후보였던 주병덕 지사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이원종 후보가 민선 2기 충북호의 선장이 되었다. 그는 제천 출신으로 관선 충북지사를 지낸 후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직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낙마하는 불운을 겪었고, 그후 서원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며 권토중래를 노리다가 자민련 후보로 선거판에 뛰어들어 민선 충북지사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의 선거구호는 ‘으뜸 도민, 으뜸 충북’이었다. 으뜸이란 구호가 그의 영민하고 깨끗한 이미지와 잘 어울려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으뜸 도민과 으뜸 충북’을 실현하기 위해 시책화한 ‘인터넷 잘 쓰는 도 충북’과 ‘2002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가 성공을 거두며 도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고취시킨 의미 있는 연대였다. 2002년 출범한 민선 3기도 이원종 시대였다. 현직이었던 이원종 지사가 인기가 시들해진 자민련을 탈당하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민선 3기 도정슬로건은 ‘빅(BIG) 충북’이었다. 빅이란 BT, IT, GT를 딴 합성어로, 바이오산업과 정보통신산업과 친환경산업을 충북의 대표산업으로 육성해 도세와 도력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신성장동력 지대로 본격 기능하고, 오송의료산업단지의 밑그림이 완성되어 갈 시기였으므로, ‘빅 충북’은 시대상황과 맞물려 어느 정도 이름값을 한 도정구호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충북 최초의 재선 도지사로 8년 동안 도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충북이 농도라라는 과거 퇴행적 이미지에서, 첨단산업도라는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킨 ‘이원종표 도정’을 만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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