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라는 그 말
‘겁나게’라는 그 말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4.02.06 1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부음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차창 밖 풍경은 모든 음이 소거된 듯 활동사진처럼 돌아간다. 지난여름 보고 싶다는 호출에 달려갔던 병원에서 외삼촌은 어린애처럼 바짓단을 돌돌말아 올렸다.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혀 허벅지 혈관을 떼어다 이식했는데 지네처럼 구불구불 꿰맨 수술자국을 보여주시며 겁나게 무섭다고... 친정엄마는 그런 동생을 두고 눈물바람을 하셨다. 칠순 갓 넘은 동생이 팔순 가까운 누나에게 응석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 저릿했는데 그게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겁 많고 마음 여린 외삼촌은 그리 늘 ‘겁나게’라는 전라도 사투리를 달고 사셨다. 서울시민이 된지 수 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울말투에 여음처럼 추임새처럼 수시로 끼어들던 외삼촌의 ‘겁나다’는 말. 애잔하면서도 따스한 그 말엔 소소한 대 바람 소리에 잠 못 이루던 외갓집 풍경이 그리움처럼 묻어 있다. 정읍 외가 뒤뜰은 대숲이었다. 여름밤, 댓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까닭 없는 설렘으로 뒤척이기라도 하면 ‘비도 겁나게 온다고’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할머니목소리. 함박눈 아래 휘어졌던 대나무가지가 튕기듯 패~앵 패~앵 일어서는 기억 속을 헤매느라 차가 밀리는 것도 잊었다. 이제 ‘겁나게’라는 그 말, 외삼촌만의 특이한 억양이 실린 그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리라.

장례식장은 먼 곳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주고받는 안부와 위로의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톤이 높기도 낮기도, 빠르기도 느리기도, 부드럽기도 투박하기도 한 말속엔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처럼 고인과 함께 했던 다양한 기억들이 담겨있다. 제주에서 달려온 이모에게선 제주의 바람 냄새가 났다. “멘도롱할 때 호로록 들이키라” 따끈한 커피를 건네며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투리가 허망한 마음을 잡아준다. 아이들이 웃었다. 멘도롱이 뭐냐는 듯. 따뜻할 때 마시라는 말이다. 아이들에겐 그저 재밌는 제주 방언이겠지만 내겐 오래 삭힌 장맛 같은 말이다. 언제까지 저 살가운 인사말을 들을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가슴 아픈 탐사보고서란 부제가 붙어있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라는 책에서 에번스는 ‘두주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쇠미해 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죽음을 맞는다. 이제 어느 누구도 과거 선조들이 열었던 사색의 길을 걸을 없다’고 얘기한다. 디지털 혁명으로 많은 자료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시대지만 귀 기울여 듣고 궁금해 하는 언어만 남으니 그 속에서 소외된 수천 개의 언어들은 침묵으로 빠져든다. 현재 6000여개 정도의 언어 중 금세기 말이면 절반이 사라질 거라고 한다. 앎의 방식의 붕괴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일까? 2010년 12월 유네스코는 인도 코로어와 함께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규정하였다.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마지막 5단계인 ‘소멸하는 언어’ 바로 직전에 해당하는 4단계다. ‘표준어’라는 규범에 갇혀 제주 방언이 소멸되는 동안 그 말속에 담긴 수많은 정신문화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설 특집으로 제주어 드라마가 제작 방송되었다. 지역 문화인들이 참여하여 토속어를 맛깔스럽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며 콧날이 시큰했다. 물론 자막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생소하긴 했지만 그 시작에 박수를 보낸다.

노인 한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겁나게’에 담긴 바람과 풍경들이 아프게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