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심기
튤립심기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3.11.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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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지난봄에 고운 꽃을 피웠던 튤립 구근을 앞뜰에 심었다. 늦은 봄에 아주 단아한 모습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아기 얼굴처럼 맑았던 꽃이다. 꽃이 진 후 구근을 캐어 2층 계단 밑 그늘에 보관했다. 여름내 건조시켜 두었던 것을 며칠 전에 앞뜰의 한 모서리 담 밑에 흙을 고르고 거름을 섞어 심었다. 물을 넉넉히 주고 체육공원에서 채취해온 플라타너스 낙엽으로 덮어주었다. 그렇게 겨울 준비를 해주고 마무리를 했다.

이제 몇 달을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을까? 빨라야 4월인데 그 긴 시간을 기다림 속에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꽃을 기르며 터득한 것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 때가 되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이 조급해한다고 자연은 그 시기를 절대로 거슬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문명의 발달로 겨울 비닐하우스 속에서도 계절 없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제철과일이니 꽃이니 별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최근 들어 이상저온, 고온 현상이 심해져서 우리나라 기후마저도 서서히 아열대로 바뀌고 있다.

몇 해 전 캐나다 여행할 때 빙하가 있는 호수 주변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밤새도록 빙하 녹아내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로는 일 년이 지나면 주변의 지형이 변한다고 했다. 이렇게 기후가 온난화 되면서 자연은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며칠 전 필리핀의 태풍으로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너무 빠른 것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사람도 다투어 어린 시절부터 먼저 가려 안간힘을 쓴다. 좀 더디면 어떤가. 지각하지 않으면 되지. 남보다 앞서 가려 하다 보니 바르게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고 뒤처지는 느낌도 든다. 사람도 약삭빠르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다.

튤립을 꽃집에서 사서 감상하면 그만이지 무엇 하러 힘들게 심고 기다리느냐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인의 수필 제목처럼 ‘기다림의 미학’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 초등학교 입학하여 제일 먼저 그렸던 꽃이 튤립이다. 유치원의 유리창에도 자주 오려붙이던 친숙한 꽃. 그 꽃을 내 곁에 심고 가꿀 수 있어 감사하다. 튤립 구근을 심고 기다림 속에 겨울을 보낸다. 봄을 기다리며 곱게 피어날 튤립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기다림 속엔 희망이 자라기 때문이다.

눈과 칼바람 같은 추위, 그런 자연의 섭리에 부딪히고 견디며 주어진 시간을 말없이 보내다 보면 봄이 오고 그 고운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 인생길이 때로는 고달프지만 마음의 꿈을 접지 않는 한 따뜻한 햇볕이 드는 시간이 올 것을 기대한다.

흰색, 보라색, 분홍색, 노란색의 튤립 꽃이 오는 봄에 곱게 피기를 기다리며 보내는 겨울을 쓸쓸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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