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사랑
가버린 사랑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3.11.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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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집을 나왔다. 스치는 바람이 차다. 약해진 몸을 추스르겠다고 여름부터 별러온 발걸음이다. 태양도 찬 기운이 싫은가 이내 모습을 감춘다. 아직 땅거미 깔릴 시간이 아닌 듯 싶은데 말이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그저 아파트 주변을 돌면서 그동안 글 창작하느라 굳어진 근육을 풀었다. 이 때 땅거미가 완연히 아파트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땅거미를 싫어한다. 땅거미 보다는 차라리 어두운 쪽이 낫다. 어둠은 불빛의 고마움을 안다. 어둠에 폭 싸일 때 나는 왠지 모를 행복을 느낄 때도 있었다.

이 때 어디선가 여인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파트 놀이터 옆 정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순간 나는 자석에 빨려들듯 소리 나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인의 모습이 불빛에 실려 흐릿하게 보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적이 전에도 몇 번 있었다. 여인이 울고 있다. 50대 초반인 듯 싶다. 술에 잔뜩 취한 음성인데, 누군가와 휴대전화를 하면서 울고 있는 것이다.

통화 시간이 길었다. 나는 여인의 헝클어진 그 모습을 마치 재미나는 영화의 한 씬을 감상하듯 보고 서 있었다. 사랑하는 남성과 헤어졌는가. 상대방에게 원망의 말을 퍼붓다가 곧이어 애원조로 톤이 바뀌기도 했다.

아파트를 두 바퀴 더 돌았다. 여인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사연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만약 실연 때문이라면 이런 말로 위로를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가슴에 못을 박듯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은 인생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약이 된다’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다운 만추다. 나는 가을이 좋은 만큼 겨울이 싫다. 이 가을 한 아름 단풍을 가슴에 안고 훨훨 하늘 끝으로 날고 싶다. 진정 놓아주기 싫은 계절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듯 영원히 곁에 두고 싶은 가을인 것을….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란 노래가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젊은 날 사랑을 불꽃 튀게 해 봤지만 나는 사랑이 뭔지 아직까지 잘 모른다. 인간의 힘으론 풀지 못하는 영원한 미지수의 단어 사랑! 이 사랑이란 단어는 시를 빚게 하고, 이별을 만들고, 질투를 낳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을 /고이 간직하렸더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이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놓친 물고기가 더 커 보인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소유도 아니오, 집착도 아니다. 가버린 사랑이 더 애틋하고 미련이 남는 것은 집착을 넘은 욕심 때문이다. 진정 사랑하고 있다면 이별마저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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