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길들이거나 묶어두지 않고
스물아홉, 길들이거나 묶어두지 않고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3.11.0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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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知其雄(지기웅)하고 守其雌(수기자)하면 爲天下谿(위천하계)라 常德(상덕)이 不離(불리)하여 復歸於瓔兒(복귀어영아)이리라.

知其白(지기백)하고 守其黑(수기흑)이면 爲天下式(위천하식)이라 爲天下式(위천하식)이면 常德(상덕)이 不忒 (불특)하여 復歸於無極(복귀어무극)하리라.

知其榮(지기영)하고 守其辱(수기욕)이면 爲天下谷(위천하곡)이라 爲天下谷(위천하곡)이면 常德(상덕)이 乃足(내족)하여 復歸於樸(복귀어박)이라.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니 聖人(성인)이 用之(용지)에 則爲官長(즉위관장)이요 故(고)로 大制(대제)는 不割(불할)이니라.

 

-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되니 덕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아 돌이켜 갓난아기가 될 것이다./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법도가 될 것이니 천하의 법도가 된다면 그 덕이 어긋나지 않아 돌이켜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영화로움을 알고 수치스러움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되니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그 덕이 모자람이 없고 돌이켜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것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의 존재 의미이니 제대로 쓸 줄 아는 이가 그의 존재 가치를 따라 쓰게 되니, 바람직한 들어씀(起用)은 길들이거나 묶어둠이 없는 것이다.

 

언뜻 보면 과연 그렇게 해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회화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관한 것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킨다’는 말은 언뜻 와 닿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컷은 수컷으로 암컷은 또한 암컷으로 그 본연의 삶을 살도록 해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고,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킨다’는 말 또한 어느 것에 치우치지 않고 흰 것은 흰 것으로 검은 것은 검은 것으로 대우할 일이며, ‘영화로움을 알고 수치스러움을 지킨다’는 말은 13장의 寵辱若驚(총욕약경: 나는 그 장에서 이 말을 ‘칭찬에도 비난에도 담담해지기’)라고 번역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읽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세계(天下)의 계곡을 이루니, 그것이야말로 갓난아이와 같으며, 생명세계의 법도를 이룰 때 어긋남이 없어 또 다시 새로운 생명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고, 생명세계의 골짜기를 이루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있는 그대로’ 살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樸(박)이라는 글자를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옛늙은이가 이 글자에 담고자 했던 것이 ‘무엇에도 길들여지거나 얽매이지 않은 순수자연’의 모습이라고 읽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존재의 가치이고 의미이니, 현실이라는 벽 때문에 자기 왜곡되거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니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제작은 깎거나 자르거나 쪼개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천진난만함이 세상에 가득한 그런 세계, 그리하여 열등감이나 차별이 없는 세계, 누구든 존중받으며 존재의 의미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그런 세계에 대한 꿈, 현실을 헤아리면 다소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꿈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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