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삶에 담긴 흥과 정한, 민속문화의 가치 높이다
소리꾼 삶에 담긴 흥과 정한, 민속문화의 가치 높이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10.31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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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노동을 소리로 달래다-충북의 소리를 찾아서
<23> 연재를 마치며


6개월간 단양~옥천까지 22곳 소리꾼 발굴·취재 "큰 수확이고 축복"
엄숙한 삶의 현장, 현대화 탓에 사라진 소리… 고달픈 삶의 모습 아쉬워

'모심는 소리'·'초벌매기 소리'·'솜타는 소리' 등 농부 땀방울에 묻어나
생생한 삶으로 듣는 충북의 소중한 유산, 지자체 관심·보존 중요성 각인

래는 삶이다.’라는 전제로 시작한 ‘고단한 노동을 소리로 달래다: 충북의 소리를 찾아서’ 연재를 마무리한다. 지난 5월부터 충북지역 22곳의 소리꾼을 발굴 취재했다. 단양에서 옥천까지 지역의 소리꾼을 탐방한 이번 취재는 단지 소리만을 취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수확이고 축복이었다. 우리의 영혼이 숨 쉬는 곳, 충북의 소리를 통해 충북의 민속문화와 삶의 방식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삶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무게 있는 질감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양반의 고장 충북사람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문화를 만나고 느꼈다.

충북민요에 대한 관심은 노동을 통한 생활 변화와 사회 구조, 문화의 흐름까지 맥을 짚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소리꾼의 소리는 곧 그가 처한 환경이었고, 엄숙한 삶의 현장이었기에 이번 기획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충청지역에서 불렸고, 지금도 명맥을 잇는 소리의 발굴을 통해 충북 문화의 변화와 흐름을 재확인했다. 노래에 담긴 흥과 정한을 통해 삶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농업의 기계화, 현대화 탓에 소리의 설 곳이 사라지고, 당연히 소리꾼의 자취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도 아프게 인정해야 했다. 민요를 아끼고, 민요의 가치를 아는 사람 중 하나로서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소리꾼을 찾아다녔다.

이번 기획취재를 시작하며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 충북 전 지역을 대상으로 소리꾼을 수소문했다. 충북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 토속민요를 기억하는 소리꾼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농촌의 고령화는 소리에 대한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소리꾼의 발굴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농번기도 겹쳤다. 농사일이 바쁜 어르신들을 만나 한가하게 소리를 부탁하는 일은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환영받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재를 거듭할수록 가치 높은 소리를 발굴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에 흥겨운 노랫소리가 저절로 실렸다. 소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내면을 응시하고 공감하는 뜻있는 작업이 되었다.

첫 소리꾼인 영동 안옥임씨의 영동길쌈 노래는 씨앗기를 하면서 부르는 씨앗는노래, 솜 타기 때 부르는 명 타는 노래, 실잣기를 하면서 부르는 물레노래, 무명을 짜면서 부르는 베틀노래를 과정에 따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어 하마터면 놓칠뻔한 소중한 자료였다.

충주 마수리 농요의 젊은 소리꾼 박용기, 이우성, 이원윤씨는 농요의 전승보존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영동 설계리 농요의 서병종 기능보유자가 부른 모찌는소리, 모심는 소리, 초벌 매기 소리, 두벌 매기 소리의 전승도 값지다. 인산리 들판에 울려 퍼진 진천 용몽리 농요의 구성진 노래도 농부의 땀방울과 함께 기억된다. 기계화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보은 농요를 지키는 보은읍 풍취리의 서정각, 김홍식, 이상호씨, 청원 농요를 잘 갈무리하고 있는 청원군 가덕면 상야리 김종국 씨의 노래는 충북 농요의 진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간 1960년대의 목도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단양의 고종식 씨, 지친 세상살이를 노래로 풀어간 제천의 김귀남 씨, 산에서 나무할 때 주거니 받거니 부르던 머슴살이 나무꾼의 신세타령을 실감 나게 부른 괴산의 김인태 씨도 생각난다. 익살과 흥을 열성적으로 발산하며 각설이타령을 부른 음성의 공순택씨, 풍류와 인정 넘치는 충주 목계 상선 들어오는 소리를 부른 김창영 씨의 노래는 아름답게 재해석 됐다.

중국 연변 정암촌의 청주아리랑은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애달픈 삶이 전해져 가슴 깊은 곳부터 아릿하게 저려왔다. 시아버지 시집살이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증평 장순분씨, 자식 여섯을 가슴에 묻고 부르던 시어머니의 애절한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봉복남씨의 상여소리는 이 땅에서 서럽게 살아온 한 많은 여성의 고달픈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꽃가마 아닌 상여 타고 떠난 여인의 사연을 구슬픈 가락으로 부른 진천 방골큰애기소리, 5대째 고향을 지키며 어린 시절부터 요령잡이를 해온 권태화 씨의 상여소리, 노랫말 속에 장례 풍습과 효·인간 됨됨이를 그대로 표현한 김동순씨의 상여소리는 전통장례 문화를 잘 보여주었다. 괴산 칠성 권혁성씨의 상여소리는 화장장의 보편화로 보기 드믄 상여행렬을 장례 절차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볼 수 있어 이번 기획취재 중에 건져 올린 귀중한 수확이었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품앗이를 하고 새참으로 권주가를 부르며 막걸리를 마시는 풍류를 즐기는 옥천 장수마을 소도리 어르신들의 흥겨움은 올가을을 풍요롭게 했다.

이번 기획은 22개 지방의 소리꾼을 탐방하며 민요에 얽힌 그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고, 고단한 삶을 소리 한 자락으로 달래며 성실하게 살아온 소리꾼의 생생한 삶의 소리를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소리꾼들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 고장 곳곳에 스며든 아기자기한 소리들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소리꾼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갖고 이들을 소리를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곤고한 삶을 노래 한 자락으로 달래며 살아온 그들의 삶은 충북의 문화와 함께 지역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줄 소중한 자원이다.

모심을 무렵부터 시작된 기획취재를 마치는 지금, 수확을 마친 빈 들녘엔 볏짚 더미가 뒹굴고 있다. 나락을 거둬들인 논과 밭에 내년 봄에도 씨앗을 뿌리고 여름엔 모를 심고 가을엔 풍성한 수확을 거두면서 농부들의 소리도 함께 영글어 갈 것이다. 급속히 진행되는 농촌의 고령화와 기계화로 인해 점점 사라져 가는 소리와 소리꾼을 찾아 더 빠르게, 더 많은 지면과 음반으로 담아내야 한다는 묵직한 의무감을 느끼며 연재를 마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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