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논매기 소리 토속적...선율 부드럽고 경쾌
모내기·논매기 소리 토속적...선율 부드럽고 경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10.10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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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노동을 소리로 달래다-충북의 소리를 찾아서
<20> 청원군 가덕면 상야리 농요


큰 논에 마을 둘러싸여 한배미·대야라 불려

수백년 구전된 농요 김종국씨 갈무리

2012충북민속예술제서 우수상 수상도

청원군 가덕면은 충북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은 남일면, 문의면에 접해 있으며 동쪽은 선도산, 선두산, 백족산, 살티재, 피반령 등의 준봉이 병풍처럼 줄을 지어 보은군에 인접해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할 곳, 상야리는 가덕면에서도 북부에 위치한다.

상야리는 행정구역상 청주군 남일면이었다. 큰 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한배미’ 또는 ‘대야’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상적동과 대야리의 이름을 따 상야리로 칭해 청주군 남일면에 편입됐고, 194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덕면에 편입됐다. 백족산 아래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상야리의 한배미 마을은 산자락에 가려져 큰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백족산은 조선조 세조대왕이 속리산을 행차하던 중 이곳을 지나다 산 중턱에 있는 백족사 샘물에 발을 씻었는데 발이 희어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한배미 마을에 소리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 있다. ‘청원농요’의 앞소리를 부르는 김종국씨(64·사진)다. 김씨는 가덕면 일대를 중심으로 수백년 동안 구전되어 내려오는 소리를 동네 어른들로부터 배워 잘 갈무리하고 있다. 한배미 청원농요는 2012년 충북민속예술축제에 청원군 대표로 출연해 우수상을 받았다.

태평소를 잘 불고 장구에 능하던 김씨의 부친은 무등도 탔다. 무등을 타고 12발 상모까지 돌리던 재주꾼이었다. 풀피리도 어찌나 잘 불었던지 개울가에서 풀피리를 불면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놀기 좋아하던 부친이 살림은 보살피지 않아 어머니가 대신 가사를 꾸려 나갔다. 모내기철이면 모 한마지기를 심어주고 쌀 한 말을 받는 고지모를 심고, 김매기철과 추수철이면 품삯을 받는 일을 한량인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했다. 힘든 일을 해도 쾌활한 성품의 김씨 어머니는 노래도 씩씩하게 불렀고 옛날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부르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김씨의 소리는 힘이 있고 씩씩하다.

김씨는 유년시절을 가덕면에서 보내고 19세부터 청주, 대전, 서울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했고, 그릇장사도 했다. 그러나 여러번 사업에 실패하고 지난 1990년 고향으로 돌아와 토끼를 기르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도회지에 나가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사업이 잘 안 됐다”며 “여름이면 물장구치고 겨울에는 지게 작대기를 두드리며 산에 올라가 삭정이 나무를 하던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다”고 말했다.

농요는 마을마다 구성이 다르고 가락과 노랫말도 제각기 다르다. 그래서 지방 특유의 음악적 특성과 문화를 듬뿍 담고 있다. 한배미 마을에서 벼를 재배하면서 부르는 ‘모내기 소리’와 ‘논매기 소리’는 오랜 세월 속에 다져온 토속적인 소리다. 흥겨운 가락과 가사 속에 담긴 조상들의 정서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모찌는 소리는 앞소리꾼이 메기는 소리 한 장단을 부르면 “뭉치세 뭉치세, 에헤야 모자리 뭉쳐내세”라고 받는 소리를 부른다. 모심는 소리는 앞소리꾼이 메기는 소리 한 장단을 부르면 “에헤여 에헤루, 상사나디이야”라고 받는 소리를 부른다.

다른 지방에 비해 받는 소리의 선율이 부드럽고 경쾌한 소위 ‘뭉치세’ 소리권과 ‘상사소리’권에 해당하는 한배미 마을의 모찌는 소리와 논매기 소리를 김씨의 메기는 소리로 들어본다.

◇ 모 찌 는 소 리

(받는 소리) 뭉치세 뭉치세 에헤야 모자리 뭉쳐내세

이 모자리를 뭉쳐다가 열 마지기 논배미로 심어내세

영화로다 영화로다 장잎이 훨훨 영화로다

이 모자리를 뭉쳐다가 삼백출 자리로만 심어내세

이 모자리를 뭉쳐다가 삼백출 자리로만 심어내세

늦어가세 늦어가네 아침 첫 참이 늦어가네

다 되었네 다 되었네 요 못자리두 다 되었네

◇ 모 심 는 소 리

(받는소리) 에헤여 헤어루 상사나디이야

여기 꼽고 저기 꼽고 이 논자리를 꼽어

이 논자리를 얼른 심고 장구배미로 넘어가세

에헤 에이요 삼백출짜리만 심어보세

에헤야 헤이여루요 상사나디야

 

힘이 있는 논매기 소리를 부르면서 논매기가 시작된다. 논매는 일은 주로 세번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처음 논매는 것을 초벌논매기 혹은 아이논매기라 한다. 초벌논매기를 하고 일주일쯤 뒤에 두벌논매기를 한다. 세벌논매기는 피사리를 하는데 논을 훒어간다는 느낌으로 논매는 작업을 마무리 한다.

논매기 소리도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로 이루어진다. 메기는 소리는 앞소리꾼이 일의 진행상황이나 그날의 날씨 등 일반적인 노랫말을 즉흥적으로 부른다. 받는 소리는 같은 노랫말을 함께 부르며 앞소리꾼과 호흡을 맞춘다.

한배미 마을의 ‘초벌매기 소리’는 매우 느리고 유장한 느낌을 준다. 앞소리꾼이 메기는 소리 한 장단을 부르면 “어허이 어허이 에헤이 에허하”라고 받는 소리를 부른다. 초벌매기 소리는 호미로 땅을 파면서 부른다. ‘두벌매기 소리’는 손으로 풀을 뜯으면서 매기 때문에 ‘논 뜯는 소리’라고도 한다. 앞소리꾼이 메기는 소리 반 장단을 짤막하게 부르면 “에헤야”라고 다 같이 뜻이 없는 소리로 받는 소리를 부른다. 두벌매기 소리는 씩씩한 느낌을 준다. 한배미 마을의 초벌매기 소리와 두벌매기 소리를 김씨의 메기는 소리로 들어본다.

◇ 초벌매기 소리

(받는 소리) 어허이 어허이 에헤이 에허하

에헤요 농군님네 이내말쌈 들어보소

이논배미를 얼른매구 저논배미로 넘어가세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지마라

너희도 늙어지면 절로 백발된다네

잘도하네 잘도하네 우리농군 잘도한다

이팔청춘 호시절에 아니놀고 무엇하리

왔다 갔다 하지말고 이논뱀이를 다심었네

◇ 논 뜯는 소리

(받는소리) 에헤야

이 논자리를

얼른 메고

장구뱀이로

넘어가세

한둘은 처지고

한둘은 달리게

어허허야

늦어가네

늦어가네

담배참이

늦어간다

왼짝편은

늘어졌네

바른짝편은

뭉쳐서 가고

한둘농군

올려채여

에헤허이요~

 

선소리꾼은 일은 하지 않고 북을 치면서 소리만 한다.

해가 저물어 가고 일의 속도가 붙을수록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선소리꾼의 신명도 더해진다. 일꾼들도 빠른 장단에 맞춰 소리하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일의 속도가 빨라진다.

일이 끝날 때 신명나게 ‘히후후후후’라는 소리를 힘껏 외친다.

김씨는 소리가 좋아 50대 초반부터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사장을 보러 장에 갔다가 근처 민요학원에서 들리는 민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해 버렸다. 당장 민요학원으로 올라가 제사장 볼 비용을 학원비로 등록했다. 이런 김씨를 부인 김영옥씨(60)는 적극 후원했다. 그렇게 배운 민요와 농요를 밑천으로 삼아 주말이면 요양원과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소리 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1000시간 넘게 봉사를 했다. 두번째 방문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보은에 있는 요양원으로 봉사를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다. 장구를 어깨에 둘러매고 춤을 추면서 창부타령과 뱃노래 등을 부르고 나오는 김씨의 이마에 굵은 땀이 맺혔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흥겹게 웃으며 박수칠 때 작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알알이 영글어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요양원 화단의 해바라기처럼 김씨도 해맑게 웃었다. 지금은 평온해 보이지만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거친 세파에 시달리면서 속앓이도 많이 했다. 그러나 사람 속에서 부대끼고, 도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찌든 삶은 고향의 넉넉한 소리를 통해 치유됐다. 김씨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우리의 소리로 봉사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며 넉넉한 웃음을 보였다. 김씨에게서 소박한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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