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 고단함 달래고 손발도 맞추고
목도 고단함 달래고 손발도 맞추고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10.03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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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노동을 소리로 달래다-충북의 소리를 찾아서
<19> 단양 영춘면 고종식 목도소리


1965년 전후 벌목성행 발밑 상황 사설로 엮어
영춘서 나고 자란 고씨 10세부터 목도꾼 노릇
사기 충전 짓궂은 소리 노동 지루함 달래기도

목도는 두 사람 이상이 힘을 합쳐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얽어맨 밧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말한다. 특히 산세가 험한 곳에서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옮기는 일은 위험하고 힘든 작업이다. 나무를 어깨로 메면 땅으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밧줄로 연결한 몽둥이를 목에 걸고 양쪽 팔로 잡고 옮긴다. 좁고 험한 길에서 온몸으로 통나무의 무게를 견디는 일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다.

목도꾼들의 목에는 늘 굳은살이 박이게 된다. 이 어렵고 힘든 상황도 덜어내고, 서로의 마음도 맞춰야 일에 실수가 없다.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목도 소리다. 소리에 맞춰 고된 노동도 이기고 손발도 맞췄던 것이다.

1965년 전후,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단양은 벌목이 많이 이루어졌고 산판에서 목도를 많이 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도로를 넓히면서 차가 산 중턱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벌목한 나무도 마찬가지다. 벌목한 나무는 일일이 목도꾼들에 의해 산 아래까지 운반됐다. 높은 산에서는 나무를 굴리고, 굴릴 수 없는 곳에서는 목도로 운반했다. 서로 발이 맞지 않으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질 수도 있다. 나무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2명이나, 4명, 6명, 8명 등이 조를 만들어 멨다. 맨 앞에 가는 사람이 선소리를 하며 지휘자 역할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길바닥의 상황을 선소리로 불러나간다.

“또랑을 건넌다 물 조심해라”, “돌이 있다 조심해라”는 등 발밑 상황을 사설로 엮어나갔다. 나머지 목도꾼들은 발을 맞춰 걸어가면서 구호에 가까운 여음을 ‘어기여차, 허야 허야’ 외친다. 뒷소리를 하며 걸어가는 목도꾼들도 구호를 외치며 가쁜 숨을 토해내면 힘이 덜 들었다. 발이 서로 맞지 않으면 나무가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넘어져서 발을 다치기도 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사고는 나기 마련이다. 다치면 변변한 약이나 의사가 없는 산골이라 무면허 의사가 동침을 놓고 지황을 떠 주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지금은 크레인 등 다양한 기계들이 작업현장에 투입되어 노동력을 대신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달랐다. 전봇대를 세우기 위해 나무를 옮기는 일도 사람의 힘으로 했다. 이때에도 목도 소리를 했다. 비석을 세울 큰 돌을 옮길 때도 목도 소리를 하면서 발을 맞췄다.

단양 영춘면에서 나고 자란 고종식씨(68·사진)는 20세부터 목도꾼 노릇을 했다. 선소리를 하던 동네어른의 소리에 맞춰 뒷소리를 했다. 그때 부른 목도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누가 말했던가, 추억은 아름답다고. 옛날엔 고되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고씨에게는 즐거운 추억이다. 그때 그 시절 고단한 노동도 노래 한 자락으로 서로의 고단함을 달래며 함께 했다.

구인사로 가는 국도 옆 외딴집에 구씨가 살고 있다. 30여채 모여 사는 마을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12 정도 가면 구인사다. 여느 농가와 마찬가지로 붉게 익어가는 감나무 밑 텃밭에 영글어가는 고추와 김장 배추, 가지 등이 고향의 가을을 느끼게 해 따뜻하고 정겹다.

세월 따라 들녘의 풍경도 달라졌지만, 고씨는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다. 1976년 강원도 탄광에 돈 벌러 10년 동안 나갔다 오고 서울에서 미장일을 2년 동안 했지만 그래도 고향이 좋아서 평생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삶이 고달파 보일지 모르지만 순박한 고씨는 행복해 했다. 욕심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고씨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어른들이 부르던 소리를 즐겨 따라 불렀다.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보다 어른들이 부르는 소리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농사일로 바쁘다는 고씨를 만나기 위해 두 차례 방문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피곤한 몸으로 도착했더니 고씨와 부인 박노순씨(59)가 고향집을 찾아온 가족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먼 길 찾아온 손님을 위해 대접이 분주했다. 귀한 손님이 멀리서 왔다며 부인이 갓 담근 김치와 삼겹살을 구워 대접한다. 뒷소리를 불러줄 김형복(58), 박병태(61), 이학선(60), 박상수(60), 곽춘재(56), 김진호씨(52)도 왔다. 이들은 아직도 노동의 고단함을 이웃과 함께 해오고 있다. 목도소리를 불러달라고 청했다.

고씨는 “금방 베어낸 탓에 물기 머금어 더욱 무거운 나무를 어깨에 메고 온몸으로 운반하는 것은 농사일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노랫말은 신세타령이나 날씨, 주위환경을 노래했다. 여인을 희롱하는 짓궂은 노랫말도 섞여 있는 것에 대해 고씨는 “목도꾼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라며 “짓궂은 소리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랬다”고 회상했다.

“가세!”라고 선소리꾼이 외치면 주위에 있던 목도꾼들이 어깨에 멜 나무 앞으로 모여든다. 선소리꾼이 “허-허야”라고 외치면 목도꾼들이 다같이 “허-허야”라고 외치면서 통나무에 연결된 몽둥이를 어깨에 멘다.

 

여보게 목도꾼들

발을 맞춰 나가세

비가 올까 겁나네

어서어서 메고 가세

오늘은 바람이 분다

오늘은 날씨가 춥네

추우니까 빨리 하세

 

(생략)

 

저기 가는 저 처녀

살구꽃을 보았나



(생략)

 

목적지에 도착해 선소리꾼이 ‘허-허야’라고 외치면 목도꾼들이 다같이 ‘허-허야’라고 외치면서 어깨에서 나무를 내려놓는다. 고씨는 “지금은 모든 것을 기계로 하니까 편안한 대신 이런 소리도 부를 기회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뒷소리를 불러준 이학선씨도 “우리 고장에 이런 소리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죽으면 후손들이 이 소리를 기억할 방법이 없으니 자료라도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씨는 노래를 부르며 배고프고 고단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고씨는 논매는 소리와 상여소리도 잘 부른다. 단양 철쭉축제나 온달축제 등 각종 행사에 초청돼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제천을 지나왔다. 찻길 옆 목공소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통나무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그 목공소에서는 기계로 통나무를 운반하고 있었다. 목도꾼들의 목도소리를 채록하고 오는 길에 만난 이 장면이 왠지 어색하고 낮설게 느껴졌다. 기계화 덕분에 수월하게 일을 하면서 노동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전통의 목도소리 역시 저 기계소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뭔가 아쉽고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문명의 발달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명의 그림자 속으로 묻히고 있는 소중한 전통문화와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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