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묻은 어미 심정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
자식 묻은 어미 심정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09.26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단한 노동을 소리로 달래다-충북의 소리를 찾아서
<18> 증평 아리랑고개를 울린 상여소리

봉복남씨 증평 신동으로 시집

10남매중 6남매를 잃은

시어머니 통해 소리 배워

충북향토민요 발표회서 선봬

의학이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장수는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하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한 보험사 직원은 사고사로 죽지 않는다면 생명은 생각보다 더 많이 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암 정복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고, 그 밖의 질병들도 하루가 다르게 극복 가능한 결과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두창·포창이라고도 하며, 마마·손님이라고도 하는 천연두는 전염력이 매우 강했다. 한반도가 화염으로 휩싸였던 6.25전쟁 중에는 4만 여명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다. 전신에 특유한 발진이 나타나고 고열이 발생하는 이 병이 마을에 돌면 희생자가 아주 많았다. 병원과 무면허 한의원이 있다지만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부분은 죽거나 곰보가 되었다.

천연두 환자가 발생하면 마을에 금줄을 매고 출입을 금지했다. 예방 외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었다. 1960년 영국 의사 제너가 창시한 종두의 보급으로 천연두 환자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2001년 11월 6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됐다.

일제 강점기 젊은 청년들은 군대에 징용되거나 광산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이 때문에 마을에는 노인이나 부녀자, 어린아이들만 남았다.

배급으로 나누어주는 콩깻묵도 배불리 먹지 못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은 영양실조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마마 등 전염병이 돌면 십중팔구 병에 걸렸다.

증평지방에서는 천연두 역신이 무서워서 임금에게만 붙이는 존칭까지 붙여 항암마마라고 불렀다. 천연두에 걸려서 죽으면 부정한 것으로 여겨 항암마마가 노할까 두려워서 상여는 쓰지 못했다. 밤에 몰래 시신을 거적에 말아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 큰 나무 위에 동발을 매고 올려놓았다. 지게도 같이 버리고 왔다. 어린아이가 죽으면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천연두가 동네를 다 지나간 후에 장례를 치렀다. 일본군에 징용되거나 광산에 강제 동원된 남정네를 대신해 마을에 남아있는 여자들이 장례를 치렀다.

증평엔 아리랑고개가 있고, 고개 너머에 작은 산이 있다. 가까운 산이라고는 이 산 밖에 없다. 마사토로 되어 있어 힘없는 여인들이 삽으로 쉽게 땅을 파고 시체를 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저녁마다 아리랑고개에는 통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1967년 증평에 새로운 철도역사가 조성되면서 아리랑고개가 개발됐다. 아리랑고개는 정안과 안골을 이어주는 고개로 옛 모습은 사라지고 2차선으로 포장됐다.

애달픈 사연이 깃든 증평의 상여소리는 봉복남(63·여)씨가 증평읍 신동에 살던 마을 노인으로부터 어깨 너머로 익혔다. 봉씨는 진천군 수의면 숫골마을에서 태어났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와 증평으로 이사해 셋방을 살았다. 어릴 때부터 소리에 소질이 있어 마을에 약장수가 오면 천막 밖에서 천막 안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 불렀다. 춘향가 등을 부르면 어른들이 과자를 주었다. 동네에서 어린 가수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19세에 증평 신동으로 시집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시어머니는 10남매를 낳았으나 6남매를 아리랑고개에 묻었다. 아리랑고개를 바라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던 시어머니를 자주 보았다. 시어머니는 명잣는소리, 물레소리 등 소리를 잘했다. 봉씨는 시어머니가 부르는 애절한 소리를 듣고 배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자주 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구슬펐던지 남편이 청승맞다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봉복남씨는 아리랑고개에 얽힌 상여소리를 2012년 11월 한국국악협회 충북도지회가 주최한 충북향토민요발표회에서 선보였다.

선소리꾼인 봉씨가 앞소리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어허 어하하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하고 뒷소리를 부르는 것이 다른 지방의 상여소리와 다르다. 단순한 상여소리가 아니라 자식을 잃은 어미들의 절규였다. 자식을 묻으러 가는 고개는 세상의 어느 고개보다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럽고 가슴 미어져 차마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초상이 나면 남자들이 요령잡이를 하고 있다. 봉씨는 “상여소리를 부를 때면 자식을 여섯이나 아리랑고개에 묻은 시어머니의 한 맺힌 소리를 듣는 듯하다”며 “아리랑고개에 유래비라도 세워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첨단 의학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사는 우리가 변변한 의료지원이 없어 보물같은 여섯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의 피맺힌 심정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봉복남씨가 선소리로 부른 상여소리를 들어보자.

 

부모동생 이별하고 이제가면 언제 오나

인명은 재천이라 죽어갈 길이 서럽구나

한달이라 서른날은 맷돌같이 돌아갈 제

꽃을 보고 놀던 나비 짝을 잃고 돌아가니

등잔불에 달은 밝고 홀로 앉아 누웠더니

이팔청춘 원통하다 높이 떠서 한탄마라

초로같은 우리인생 이슬같이 가는구나

청산노송 산천경계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버님전 뼈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이 세상에 생겨나서 부모은공 갚을소냐

오늘 아침 성튼 몸이 저녁나절에 병이 들어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다

애시당초 이 세상에 생겨나지나 말을것을 

동지섣달 설한풍에 달은 밝고 명랑한데

금옥같은 증한일신 구름같이 가는구나

수명장수 다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니

푸른 것은 버들이요 아지랑이 아롱아롱

명산대찰 찾아가니 북망산천이 여기로세

젊어청춘 혼기더라 바람처럼 왔다가

창외삼경 세우시에 원혼맺힌 한이로다

애월공산 두견새는 주야장창 슬피운다

황천혼신 울음소리 무주고혼 슬프구나

어허 어하하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