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국 원장의 고뇌, 그리고 진실과 역사
박경국 원장의 고뇌, 그리고 진실과 역사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3.07.2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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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NLL의 고래싸움에 대책없이 등이 터지고 있는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의 페이스북 글이 화제가 됐다. 그는 “진실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고 진실만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N. 부알로의 명언을 빌려 최근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남북정상 대화록 열람과 실종사태를 놓고 여야가 사활을 벌이는 틈바구니에서 졸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도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사실 그가 충북도 행정부지사에서 국가기록원장으로 옮길 때만 해도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내심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을 위해 좀 더 큰 일 하기를 바랐는데 그 자리가 일종의 한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그의 공직을 통틀어 최고의 지명도를 누리게 됐으니 세상 일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거짓도 진실로 만들고 진실도 거짓으로 만든다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이전투구에 정작 그가 말하고 싶은 진실은 마음 속에서나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적으로 국가기록물 이른바 사초(史草)는 과거 임금님조차 볼 수 없었다는 말이 상징하듯 원초적으로 금기(禁忌)를 전제로 했다. 때문에 이를 건드렸을 경우 거기엔 반드시 역린(逆鱗)의 후폭풍이 따른 것이다. 사초로 인해 살육의 보복이 자행된 연산군의 무오사화(1498년)가 대표적이다. 그러기에 조선왕조 500년 동안 사초에 손질이 가해진 건 선조 25년(1592년)과 영조 52년(1776년) 단 두 번에 불과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였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근·현대에 들어서는 최고 통치자에 관한 기록물은 의도적으로 기피됐다. 이승만 정권에선 대통령이 주도한 국가 주요 회의록과 비밀문서 등이 단 한 건도 없이 폐기됐고 박정희 정권 역시 서거 후 주요문서가 깡그리 사라졌다. 전두환은 퇴임 후 주요문서를 사저로 이관함으로써 NLL 불똥이 자칫 또 이쪽으로 튈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나 독재자가 후대에 책잡힐 것을 우려해 기록물을 없애거나 남기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이의 여파로 2000년대 중후반에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자료 대한민국사’의 자료 중 무려 92.9%가 신문기사였다는 조사가 나와 충격을 안겼다.

1962년, 당시 내각 사무처 총무과 촬영실로 출범한 이후 몇 차례의 소속과 직제 그리고 명칭변경을 거쳐 오늘에 이른 국가기록원은 바로 이러한 맹점을 보완키 위해 2007년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과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게 된다. 국가기록물의 보존과 관리에 엄격함을 기했고 이때부터 국가기록원에 ‘대통령기록관’을 별도 운용함으로써 대통령 재임시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남기게 했다. 통치자의 책무와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감시를 더 강화한 것이다.

그런데 사초 증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고 그 논란의 중심에 박경국 원장이 있다.

박 원장이 페이스북에 인용한 N. 부알로는 17세기 고전주의 미학을 대표했던 인물로 그의 명언 중엔 또 다른 기발한 것이 있다. “진실은 진실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와 “가끔 하나의 악의공포는 더 심한 악으로 인도한다”이다. 마치 NLL 공방과 대화록 실종 사건이 향후 불러올 무슨 묵시록이라도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우선, 검찰 수사로 넘어간 이 문제가 ‘진실은 진실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진실이 아닌 진실, 진실을 가장한 진실이 수사물로써 세상에 드러난다면 우리 국민은 또 한번 역사의 사기(詐欺)를 부여잡고 신음할 것이다.

아울러 NLL과 국정원, 그리고 남북정상 대화록을 놓고 여야가 국민민생을 내팽개친 채 지금까지 전개해 온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악(惡)의 공포임에 분명한데도 이것이 더 심한 악으로 인도된다면 그땐 국가도 끝, 국민도 끝장이라는 것이다.

사초를 들먹여 ‘역린’을 건드린 그 화(禍)의 업보가 과연 어느 정당에, 또 누구한테 떨어질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그래도 역사의 진실만큼은 절대로 숨죽이지 않을 거라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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