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풀이 나서야
콩 심은 데 풀이 나서야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3.07.0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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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친구의 권유로 그 친구의 땅 1200평방미터에 콩을 심었다.

6월 최고의 기온을 자랑하는 날들, 아침부터 불볕더위에 넓은 땅을 관리기 한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풀밭을 온전한 밭으로 만들어가며 구술 땀을 흘렸다.

개망초의 향기가 작렬하는 밭, 저 개망초는 돌보아 주지도 않는데 왜 저리 잘 자라나는 건지. 온 종일 밭에 로터리를 치고 두둑을 만들어 두 세알씩의 메주콩을 3일에 걸쳐 혼자 심었다.

내가 밭을 빌려 콩 농사를 짓기로 한데는 작은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지금보다 좀더 부지런해 보자는 의미에서 였다.

농사라는 것이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6시 이후 퇴근하면 지인들과 만나 식사나 술자리로 매일을 지냈거나 할일 없이 집에서 TV나 보며 쉬곤 했었는데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수양하는 마음으로 오로지 홀로서 그 시간을 활용하여 농사를 결심했다.

두 번째로는 나와 아내를 위한 작은 이벤트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부부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남들 다 가는 그 흔한 해외여행을 단 한번도 가지 못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나름 사회생활 한다는 핑계로 시간의 여유를 남을 위해 활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을에 콩의 결실이 어느 정도 일지는 몰라도 작게나마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만들어낸 콩을 팔아 해외여행을 가기위해 시간만 나면 밭에 나가 구술 땀을 흘리는 보람은 크다. 세 번째는 무식한 농사꾼이 무식하게 짓는 유기농 콩 생산을 위해서이다. 콩씨앗부터 농약처리를 하여 파종 후 새들로부터 종자를 보호하고 잡초의 번식을 막기 위한 고독성 제초제 까지 살포하면서 콩을 지켜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게으른 농부의 핑계 일 수 도 있다 하겠지만 매일 나가서 무조건 플을 뽑고 밭을 메며 그 속에서 정신수양을 하는 법을 알아가는 보람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초제를 하지 않은 밭이랑이며 고랑엔 하루가 다르게 콩 싹보다 풀이 먼저 자라 노동력을 극대화 시키며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웃 할아버지의 눈가엔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한 걱정을 해주신다. 이 밭은 유난히 풀이 많이 난다며 지금이라도 제초제를 써야 콩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훈계를 하시지만 저는 그냥 밭메고 뽑을래요. 하고 웃으며 대꾸하면 그래도 젊은 사람이 뚝심은 있네 하면서 웃고 가신다.

 

풀을 뽑으며 생각 한다.

눈꺼풀이 시간을 닫으려고만 하는 오후

내게서 멀어져간 슬픈 시간들의 행적이

풀색보다 더 진하게 묻어난다

 

난 무엇을 하든

누군가에게 필요한 콩이라 생각 했는데

잡초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늘 옯다 생각하며 도도하게 콩 싹을 피울때

저마다의 사람들은 날 잡초라 생각 했다

 

무수히 베어지고 뿌리째 뽑히는 경각의 시간

콩들을 위해 사라져버린 내 망각의 흔적 이었다

 

이처럼 나도 사회집단의 어느 무리 속에서 언제고 밟이고 뽑혀져 조용히 밑거름으로 스며들었을 시간, 그 반성을 알았다는 것은 제일 비싼 결실일 것이다. 또는 보살 펴주는 이 없는 거친 들판에서 억센 발에 짓밟혀도 새롭게 솟구쳐 고통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오해와 억울함에 변명하지 않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다시 제자리에서 일어서 뚝심 있게 부지런히 초심을 잃지 말고 콩 심은데 콩 난다는 사실을 몸으로 습득하며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땅에서 겸손과 성실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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