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운치가 느껴지는 시전지
선비의 운치가 느껴지는 시전지
  • 한명철 <인형조각가>
  • 승인 2013.07.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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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조각가 한명철의 손바닥 동화-길우물 이야기
한명철 <인형조각가>

옛 선비들의 운치는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시전지도 그중 하나입니다.

시를 써 보낸다는 것은 꽤나 멋스러운 것이었는데요, 한지 한 귀퉁이에 매화가 있는 나무판 그림 조각을 찍은 뒤 시를 써서 보낸 바로 그 판이 시전지판입니다.

겨울이나 이른 봄날, 하얀종이에 붉은 색으로 찍은 매화 시 한 편 받아 본다면 얼마나 기쁠런지요. 한동안은 시전지판이 비싸지 않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속 박물관에서 시전지판에 관심을 가지고 사들이는 바람에 지금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귀한 물건이 되었고, 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새해가 되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보낼 때 시전지판을 써보니 역시나 좋은 반응이었지요.

얇은 소나무 판에 투박하게 문양이 새겨져 있고 뒤에는 부적문양이 있습니다. 매화, 나비, 국화, 난, 바위, 구름 등과 같은 문양이 대부분입니다.

적요 가득한 방에 홀로 앉은 선비가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 한수 써 보내면, 멀리 있는 친구가 또 그렇게 응답처럼 이편에 와 닿는 시 한수. 이런 운치 있는 것들이 사라진 게 아쉽습니다.

이따금 누가 시전지판에 시 한수 적어 보내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곁에 와 머물기도 합니다. 아니 그리움의 빛깔을 담아 내년 봄, 내가 시 한수 보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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