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언니
엄마 언니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3.07.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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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에서 온 편지
이수안 <수필가>

큰언니가 내려갔다. 일에 묻혀 사는 나를 한달도 넘게 보살펴 주고, 뽀얀 피부로 왔다가 까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형부가 계신 집으로 갔다. 음성역에 큰언니를 태워주고 포도밭에 오니 냉장고 문에 익숙한 글씨의 쪽지가 보인다. 건망증이 심한 나를 위해 큰언니가 남긴 쪽지다.

<집에 갈 때 개 사료 가지고 갈 것, 상추는 씻어서 락앤락 김치통에 담아 저온창고에 두었음, 수경이 반찬은 냉장고 유리그릇에 있음, 바쁘면 언제든지 전화해라. 포도 딸 때 또 오마.>

다시 포도밭으로 들어가면서 기차 시간이 빠듯하도록 일만 하고 간 큰언니 생각에 코가 찡하다.

포도는 벌써 익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한 나무에서 달린 포도송이들은 익는 속도가 모두 같다. 힘이 조금 센 가지가 조금 약한 가지의 포도에 양분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한 부모 아래 의좋은 형제처럼 오순도순 정다운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보며 내 형제들을 생각한다. 두 동생과 작은 언니, 오빠, 그리고 많은 동생 때문에 걱정 또한 많은 큰 언니까지.

일곱 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큰언니는 학교 결석을 그렇게도 많이 했다고 한다. 동생들 목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바느질 솜씨도 좋아 동생들 옷 만들어 입히고,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이며 집안일까지 하자니 출석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워줄 큰언니가 없다. 큰언니가 깨우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더 뒹굴다 일어나서는 좀 더 자게 두지 않았다고 투덜거리고는 했는데, 그러면 큰언니는 시원할 때 어서 가자며 서두르고는 했는데.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나는 다섯시에 일어나 포도밭으로 올 것이다. 아직도 포도 봉지를 다 씌우지 못했으니 큰언니가 깨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야 한다.

어머니도 안 계신 이 땅에 내가 가장 편안하게 투정부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예순아홉의 큰언니, 이제는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건만 아직도 나는 그 옛날처럼 염치없이 받기만 한다.

큰언니가 내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음성에 포도나무를 심으면서부터다. 딸 같은 동생이 혼자 포도농사를 짓겠다니 차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사년 전이었다. 큰언니가 이른 아침에 풀을 뽑다가 독사에게 오른쪽 손가락을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때 큰언니가 겪은 고통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큰언니는 퉁퉁 부은 팔에 깁스를 한 채로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일꾼들 식사 준비를 해내고는 했다. 왼손도 아니고 오른손을 다쳤는데 그 팔로 어떻게 일꾼들 식사 준비와 새참을 다 해낼 수 있었을까.

그건 언니의 마음이 아니었다.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자식이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나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성의 위대함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하늘로 가신 후 가장 후회되는 것은 효도할 기회를 놓쳐버린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그건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눈시울을 적시게 할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큰언니 아니, 엄마 언니는 저녁마다 다리에 파스를 붙이는데, 무심한 시간은 뭐가 그리 급한지 쉬지도 않고 참 잘 내달린다.

나는 그래서 순간순간 더럭 겁이 나고는 한다. 건강할 때 내가 잘해 줘야 하는데, 또 하나의 회한은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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