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무릎꿇은 세상
돈에 무릎꿇은 세상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6.24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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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그 많은 재산도 모자라 저런 추한 짓까지 해가며 배를 더 불려야 하나”. 수백·수천억원대 부자들이 해외 조세피난처에 종이기업을 만들어 세금포탈 의혹을 사는 것을 보고 서민들이 갖는 한결같은 의문이다.

“우리는 그들 재산의 100분의 1, 1000분의 1만 있어도 하늘에 감사하며 겸허하게 살아갈 텐데”하며 혀를 찬다.

배가 터질 것 같으면 좀 덜 먹으면 될텐데, 목구멍까지 차도록 잔뜩 밀어넣은 다음 버진아일랜드 같은 곳으로 달려가는 이유를 하루하루 생계에 쫓기는 서민들은 도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들어 이런 궁금증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한푼이라도 더 거머쥐려는 부자들의 안달을 서민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분은 교도소와 종합병원 호화병실 사이에 전용출입구를 만들고 무시로 드나드셨던 예의 그 ‘사모님’이시다. 그는 20대 여대생을 사위의 내연녀로 의심해 청부 살해한 죄로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조카 등 2명에게 살인을 청부했고, 하수인들은 여대생의 얼굴에 엽총을 난사해 끔찍하게 살해했다. 1억7000만원. 그가 자기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데 지불한 돈이다.

교도소 담장도 그의 재력 앞에서는 판자 조각에 불과했다.

2007년부터 3차례 형집행정지를 허가받고 7차례 연장까지 받아 가며 4년 1개월을 교도소 밖에서 지냈다. 대학병원 특실에서 유유자적하며 20여차례 외출·외박도 즐겼다. 유명 대학병원이 그에게 무려 12개 병명의 진단서를 발급해준 덕분이다. 진단서 발급에 개입한 이 병원 의사들이 최근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고 있지만 이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검찰은 진단서만 보고 번번이 형집행정지를 허가했다. 그에 대한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는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죽은 자식의 한을 푸는데도 돈이 들어갔다. 당시 사모님의 청부를 받아 살인을 집행한 하수인들은 베트남까지 도망갔다가 잡혀왔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였다.

수사기관 대신 범인을 쫓아 붙잡는데 2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피해자 가족이 거액의 경비를 조달하지 못했다면 사모님은 처벌을 면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개인이 국가기관의 공적 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럴 때를 위해 최대한 돈을 벌어둘 필요가 있음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부유충이 출세의 지름길로 꼽는다는 국제중학교 입학비리에서도 돈은 맹위를 떨쳤다. 재벌가 손자는 특례입학이 가능한 사회적 배려자로 둔갑해 합격했다. 학교 심사위원들은 평점을 조작해 진짜 배려받아야 할 가난한 학생들을 명단에서 밀어냄으로써 재벌가에 일치단결 종사했다.

돈으로 못할 일이 없는 나라, 돈이 없으면 법이 보장한 권리와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나라에서 돈은 절대신으로 군림할 수밖에 없다. 법을 유린한 사모님의 부당한 행태가 세상에 알려진 과정도 공적 시스템과는 무관하다. 기막힌 꼴을 보다못한 대학병원의 한 직원이 피해자 부모에게 귀띔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의 정의감이 병원 직원만도 못한 나라에서 돈이 무소불위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해서 그들은 돈에 혈안이 돼있는 것이다. 돈의 위력은 빈부격차가 커져서 돈이 절박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더욱 막강해진다. 돈줄까지 독점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통 부자, 얼치기 부자가 돼서는 돈 맛을 제대로 누리기 어렵다. 부자 중의 부자, 슈퍼 부자가 돼야 세상을 부릴 수 있다. 돈 되는 곳마다 빨판을 들이대고 흡입하되 자선과 세금은 사절해야 한다. 빈부격차가 아니라 돈의 효용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이 집중되는 것이 문제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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