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名人) 명장(明匠)
명인(名人) 명장(明匠)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3.06.1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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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퇴근 후 집에 오니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가사 일을 하며 종 종 노래 호흡을 가다듬는 허밍(Humming)을 한다. 그런데 노랫소리는 들리는데 정작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부엌과 거실을 둘러봐도 없어 안방으로 갔더니 장롱 근처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장롱안에서 노래할리는 없을 터인데? 생각하며 무심코 장롱을 열어보았다. 아니, 아내가 장롱안 이불위에 앉아 노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무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이다.

“아니, 여보. 이 더위에 여보 왜 장롱에서 불러요?” “집에서 노래를 불렀더니 이웃에서 씨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와서 ……”

얼굴이 상기되어 땀방울로 뒤범벅된 아내를 안아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내도 작은 어깨를 들먹이며 훌쩍인다. ‘그 놈에 노래가 무어라고 이 가녀린 여인을 농속에 갇히게 했단 말인가……?’

웃 옷을 벗고 답답한 마음으로 집 옥상에 올랐다. 가끔 올라와 심호흡을 가다듬는 유일한 독백무대이다. 저만치 보문산이 지친 낮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어스럼 어스럼 까아만 밤을 준비하고 있다. 불볕더위로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저녁이 되어서야 싱그러운 바람이 되어 감나무 잎새에 비로소 머문다.

아내는 여학교 시절 기계체조를 했었단다. 작은 체구에 날렵한 몸매의 유연성을 지녀 담당 선생님의 눈에 띄어 체조연습을 하는데 이를 본 장모님이 여자가 그런 체조하면 안된다며 만류하였단다. 그 후 성악과 그림그리기, 뜨개질, 글쓰기 등 예능분야 취미가 있어 노력을 했다.

처녀시절 문학동인 활동을 함께하다 만나 결혼을 했는데 그간은 아이 셋 키우며 살림하느라고 경황이 없었다. 그 후 우연히 문학회 모임에서 노래를 몇 번 불렀는데 들을만하다는 평가에 따라 이런 저런 문화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아내는 기왕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음악원에 다니고 있다. 개인 연습실이 없어 마당에 있는 세탁실이나 목욕탕에서 노래연습을 한다. 또는 부부가 차를 타고 나가 드라이브 하면서 차 안에서 노래연습을 하기도 했다.

성악이란 다른 노래와 달리 시원하게 가슴을 열며 가창력있게 토해내어야 한다. 입을 다물고 콧소리로 발성창법을 구사, 상성(上聲) 선율로 여러가지 성부(聲部)의 울림으로 ‘푸치니’의 오페라나 ‘나비부인’처럼 시원하게 뽑아내는 특성이 있다. 이래서 성악은 가슴을 조이거나 숨 죽이며 연습할 수 없다. 그래서 성악가들에게 남 다른 고통이 따른다.

세계적인 거장 ‘카라얀’을 만나 ‘플라시도 도밍고’ 등과 함께 활동한 ‘조수미’는 카라얀으로 부터 “수미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 라는 극찬을 들으며 정상에 우뚝 섰다. 그는 영양실조와 빈혈, 성대의 아픔과 목에서 피가 나오는 등 숱한 역경을 거쳐 오늘날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되었다.

잘 알려진 미성(美聲)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10대 청소년들의 우상이다. 엄모(嚴母)슬하에서 네 살 때부터 종아리를 맞으며 성장,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에 내동댕이 쳐지다시피하여 노래공부를 하였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교육아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이다.

언제인가 텔레비전에서 어느 유명한 발레리나의 발가락을 보았다.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발가락이 휘어져 못생긴 발을 보고 놀랐다. 잘 아는 조각가의 손을 만져본 적이 있었다. 그의 손은 마치 소나무 껍데기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는 조각가인데 말이다.

명인(名人) 명장(明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명인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는 그런 피 고름의 인고에 녹녹한 세월 속에서 피어나는 대중의 우상이요, 꽃이다.

“그러나, 여보. 훌륭한 성악가도 좋지만 이젠 장롱 속에 갇히는 가녀린 여인은 되지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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