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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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랑 (Ⅷ)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 밖에 없는데/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 황진이의 꿈 -

이 詩는 김성태 작곡으로 '꿈길에서'라는 제목의 가곡으로 작곡되어져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이 시에서 황진이가 말한 '님'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것은 소세양 일수도 있고, 선전관 이사종 일수도 있을 것이다. 황진이가 유명한 문인이면서 대제학인 소세양을 한 남자로서 평생 가슴에 두고 사랑하기는 했지만, 평생 동안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은 유일하게 이사종(李士宗)이라는 사람뿐이었다.

선전관 이사종은 노래를 잘 불렀다. 일찍이 사신으로 가는 길에 송도를 지나가다가 천수원 냇가에서 말을 쉬게 되었다. 갓을 벗어서 배위에 덮고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다가 저절로 흥에 겨워 두어 가락을 청아한 목소리로 읊었다. 때마침 황진이도 그곳을 지나치면서 천수원 밖에서 말을 쉬게 하다가, 이사종의 청아한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황진이가 한참 동안을 듣고 나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저 노랫소리는 시골구석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듣자하니 한양에 이사종이라는 멋진 풍류객이 있다는데 혹 그 사람은 아닐까"하여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과연 당대의 명창 이사종이 틀림없었다.

황진이는 자리를 옮겨가서 이사종에게 접근하였고, 서로 자기의 심경을 이야기한 끝에 이사종을 집으로 모시게 된다.

그 당시 황진이의 아름다운 모습과 문학과 예술의 뛰어난 재능에 당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황진이를 찾아 모여들었지만, 이처럼 황진이가 한 남자에게 반하여 접근한 것은 이사종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명성이 높았던 이사종은 황진이가 흔히 사용하는 수단을 역이용하여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황진이를 향한 뜨거운 연정을 노래로 멋지게 호소했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의 연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정열적인 이사종의 표정과 아름다운 목소리에 반한 황진이는 이사종과 함께 살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흔히 말하는 계약결혼과 같은 방법이었다.

1887년에 루 살로메가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와 계약결혼을 한다. 또 세계의 주목을 받은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브와르의 계약결혼이 1929년임에 비해 이미 16세기에, 그것도 유교의 도덕적 윤리가 팽배하게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조선시대 중기에 계약결혼을 했다니, 참으로 황진이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며 산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다.

아무튼, 처음의 3년은 황진이의 집에서, 다음의 3년 동안은 이사종의 집에서 각각 생활을 책임지면서 즐겁게 살자는 약속을 했고, 그 두 사람은 그 약속을 충실히 실행했다. 계약된 기간 동안의 생활이라서 더 애틋했을까 꿈같은 6년 동안의 생활은 끝났고, 황진이는 약속한 대로 이사종과 헤어져 미련없이 송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부와 명예를 가진 남자도, 잘 생긴 남자도 아니지만,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스스로가 반하여 사랑한 황진이인데 왜 미련이 없었을까. 그러한 감정을 속으로 삭히면서 처리하는데 냉정한 일면을 보여주는 황진이이지만, 한 여자로서 지아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어 다음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애잔함을 표현한 시조를 쓰기도 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시조-

시대를 앞서가고 자유분방한 삶을 산 여자, 황진이는 40살이 되던 여름에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죽어 묻혀 백골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모하기를 그치지 아니한다. 그러한 사람들 중 기억해야 할 사람이 백호 임제이다.

평생 황진이를 못내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그는 마침 평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에 들렸으나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절망한 그는 그 길로 술과 잔을 들고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다음의 시조를 지어 황진이를 애도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임제 시조-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하여 임제는 결국 파면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도 죽게 된다.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죽음. 황진이는 죽었지만, 그녀의 문학은 남아 우리는 오늘도 거리에서, 혹은 어느 가난한 문학가의 서재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의 황진이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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