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영 <사진가>
지난 1905년(대한제국 광무 9년)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사이에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후 착착 진행되어 온 일본의 한국말살야욕 정책이 5년 후 한일합방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조약은 다섯 개의 조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친일 매국노가 있었으니 역사적으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이다.
이들은 조약체결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 이를 거부하고 있는 고종에게 온갖 협박과 회유로 반강압적 행위를 저지르며 일본의 마수노릇을 한 자들이다.
그 후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36년 8월, 심하게 찌들어 살고 있던 민족에게 신념과 용기를 갖게 한 것이 손기정 선수의 제13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대회 우승소식이었다.
이 대회에서 손기정 선수가 1등, 남승룡 선수가 3등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신문은 호외로, 방송은 뉴스로 이 소식을 보도하였고 전국이 손, 남 두 선수의 마라톤 제패승전보로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민족혼의 피가 들끓었고 새로이 조선의 맥박이 뛰게 되었다.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패권을 놓고 조선이 낳은 한 청년에 의해 위대한 환희의 자긍심을 일깨웠다고 보도했다.
승전보가 전해지고 보름 후인 8월 23일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세계 제패 기념행사로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를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사로부터 입수하여 무료상영한다는 사고를 신문지면에 게재했다.
“이제야 올림픽의 막은 그쳤다. 그 설비와 규모에 있어서도 공전(空前)하였다. 그러나 인류 이십이억의 선두를 달린 우리의 손(孫), 남(南) 두 용사의 역사적 제패전을 보고 온 자 누구며 또 영예의 월계관을 싸워 얻은 두 선수의 씩씩한 거동을 보고 온 자는 몇몇이더냐, 혹은 전파가 전하였고 활자가 기록을 말하였다 할지라도 그 성전(聖戰)의 쾌절장절(快絶壯絶)한 실경(實景)을 보지 못한 것은 한 큰 한사(恨事)라 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신문 지면에 손기정 선수 우승과 관련된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상대에 서 있는 손 선수의 사진도 함께 실었다.
‘머리엔 월계관 두 손엔 감람수(橄欖樹)의 화분(花盆)! 마라톤 우승자 우리용사 손기정군’이란 설명문이 붙은 이 사진은 1판에서는 일장기가 손기정 선수의 가슴(옷)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으나 2판에서 지워져 있었다.
일장기가 지워진 신문이 배포되자 일제 총독부는 즉시 동아일보의 배포를 중지시켰고 경기도 경찰부가 조사에 나섰다.
동아일보에 들어온 형사대는 사진부 암실과 제판실을 수색하고 가필한 사진과 사진제판 원판을 압수한 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선명하게 인쇄하여 다시 배포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런데 실제 손기정 선수의 옷에 일장기가 지워진 사진이 처음 보도된 것은 동아일보가 아닌 조선중앙일보였다.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승전보가 전해진지 5일 후인 1936년 8월 13일자 조간 4면에 손 선수의 시상 사진을 게재하면서 일장기를 지웠으며 ‘머리에 빛나는 월계관, 손에 굳게 잡힌 견묘목, 올림픽 최고 영예의 표창 받은 우리 손 선수’라고 설명을 붙였다.
이 사진은 일본에서 받은 전송사진이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인쇄도 선명하지 않아 경무국의 검열관도 일장기말소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따라서 독자들도 신문의 저항의도를 잘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신문의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결행된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조선중앙일보는 자진 휴간하였고 동아일보도 8월 27일자로 무기정간을 당한 후 1937년 6월 2일 해제되었는데 이 9개월 동안 모진 고통을 겪었다.
동아일보의 장용서 편집자, 현진건 사회부장, 이길용 운동부기자, 이상범 화백, 신낙균 사진부장, 서영호, 송역수 사진부기자, 최승만 잡지부장이 연행되어 고등계형사들로부터 온갖 고문과 폭행, 사진수정과 게재경위는 물론 말소배경과 공산당관련 여부 등을 혹독하게 추궁 받았다.
이 사건이후 일제의 언론 길들이기 정책이 교묘하게 자행되었고 민족언론의 저항정신도 차츰 허물어져 갔다.
미나미총독의 등장 이후인 이때 중일전쟁이 일어났으며 신문은 완전히 일제의 통제 아래서 허덕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