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의 생태를 보며
우렁의 생태를 보며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3.05.0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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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어렸을 적, 우리 코흘리개들은 우렁이를 잡으려고 동우리를 지어 방죽과 논으로 자주 몰려가곤 했다. 그런데 제법 큼직한 빈 우렁 껍데기가 시냇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렇게 말했다.

“저 우렁은 황새가 빼먹었다!”

우렁 껍데기를 보면서 먹음직스런 살코기를 황새 혼자 얄밉게 빼먹었다 해서 우린 황새를 미워했다.

그런데 차츰 성장하면서 괜히 황새를 미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큰 숫우렁을 잡아서 까보면 껍데기 안의 하얀살이 빠지면서 푸르스름한 똥이 둥글게 말리며 빠져 나왔고, 번식기에 있는 암우렁을 깨보면 하얀살이 빠지면서 그 밑으로 아주 작은 새끼 우렁들이 옹그라져 수십 개 뭉쳐 있었다. 그 작은 새끼 우렁들은 어미 우렁이 호흡할 때마다 들어오는 갯물 등으로 영양을 채워 어미 우렁의 살을 파먹으며 자란다. 작은 새끼 우렁들은 어미 우렁의 속살을 다 파먹다가 크게 되면 밖으로 나와 생활하고, 어미 우렁은 빈껍데기가 되어 둥둥 허허로이 떠다니다 논둑의 물꼬를 타고 냇가로 나와 바다로 강으로 가면서 없어진다.

자신의 새끼 우렁들을 위해 살을 다 파서 먹이고는 껍데기가 되어 가엾게 떠돌다 허허로이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이러한 우렁이 세계의 생태는 어쩌면 우리의 인간생활과 비슷할까? 우리 인간도 삼백여 일 간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다가 태어나 모유를 먹으며 어머니의 고단백 영양을 빨아 먹는다. 자라면서 갖은 앙탈을 부리며 품을 못 떠나 보채며 성장한다. 이렇게 아이로부터 시달림을 받은 우리의 어머니를 보라.

이렇게 성장하여 학교를 다니고 사회로 진출하여 나이를 먹으며 스스로 세상을 제법 아는 것 같으나, 어버이는 늘 물가에 노는 어린애로 생각되어 근심이 떠나시질 않는다. 이러기까지 우리네 어버이는 그 고운 살결과 모습들은 다 지워지고 허리띠 졸라매고 바싹 마른 피골이 상접한 꺼끄러기 쉰 모습들이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다 노망(老妄)이 들면 오줌똥을 자손이 받아낸다. 이런 세월을 통해 자손과의 정을 뿌리치고 저 세상으로 가시는 것이 아닌가. 노망 든 부모를 한 번 잘 모시는 효자 드물다는 말도 있다.

옛날 산골에 어느 효자는 추운 겨울날 아버님이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먼저 살며시 일어나 아버님이 입을 옷을 입고 자기 체온으로 따뜻한 훈기를 채워 놓았다. 그래서 일어나기 전에 아버님 머리맡에 고이 개어 놓아 썰렁한 한기를 없게 해놓았다는 얘기는 많이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지난 어버이날 효행상을 받은 어느 중년 남자의 지극하고 눈물겨운 효도를 매스컴을 통해 들었다. 연로한 모친이 한 분 계시는데 때때로 멀리 사는 아들 딸이 그리워 가고 싶으나, 약한 몸과 차멀미로 못 가 애태웠단다. 어느 날 이를 알아차린 이 아들은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잘 개조하여 만들어 단 후 연로하신 모친을 태우고 무려 6시간이나 달려 그렇게 가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는 아들 딸네 집을 다녔단다. 그러다 보니 교통순경에게 적발되어 딱지를 뗄 뻔 했던 일이 수 십 번이 아니었으나 사정 얘기를 하면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더라는 어느 효행상을 받은 사람의 수상 소감의 첫 마디였다. 한낱 미물에 속하는 우렁이의 생태를 보며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보니 여간 불효 중에 불효가 아니다. 못 사는 것이 죄 이련가, 세상살이가 죄 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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