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병’에서 생각나는 홍정욱
'노원병’에서 생각나는 홍정욱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3.1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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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이름 석자가 ‘노원병’인 친구가 요즘 자기가 갑자기 유명해졌다고 자랑한다. 실제 유명세를 타는 것은 이 친구가 아니라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국회의원 선거구 중 한 곳인 ‘노원 병’(상계동)이다. 대법원이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가 삼성에서 돈 받은 의혹을 받는 검사들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한 죄를 물어 의원직을 박탈한 지역구다. 그래서 다음달 24일 보궐선거가 치러지고, 노 전 의원의 아내인 노동운동가 김지선씨가 남편의 명예 회복을 선언하며 출사표를 던진 지역구다. 결정적으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정치 재개를 위한 교두보로 삼고자 출마를 결정해 야권 내에 격한 시비가 벌어지면서 이슈로 떠오른 곳이다.

‘노원병’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단연 안 전 교수이다. 노 대표가 억울하게 옷을 벗었다는 동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야권도 기득권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가면서 진보정의당의 지역구 승계가 굳어지는 상황이었다. 안 전 교수의 출마 언급은 야권의 이같은 구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진보정의당은 “대선 후보를 지낸 소위 거물급 정치인이 진보 정치인에 대한 탄압의 결과물인 보궐선거 지역에 출마한다는 것이 삼성이 동네빵집을 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난했다. 아내를 내세워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대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노 대표도 분개했다.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 돈 벌 생각은 않고 집 안에서 편하게 식구들 음식을 나눠 먹으려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표의 심정에 이해는 가지만 직접 안 전 교수를 질타하고 나선 대목은 거슬린다. 감히 유권자와 지역구에 대해 기득권과 지분을 주장하고 울타리를 치려는 모양새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안 전 교수에게 쉬운 길을 가려한다고 비난하지만, 벅찬 상대를 피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도 다를 것이 없다. 그의 아내는 노동운동에 기여한 경륜이나 인품으로 봐서 진보정당의 총선 후보로 모자람이 없다. 그렇더라도 세습의 냄새를 지워내기는 어렵다. 정당의 대표가 아내를 후보로 발탁하고 상대의 출마를 견제하는 언행에서는 한낱 필부의 모습만 드러날 뿐이다.

안 전 교수의 행보 역시 구차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정치가 구태를 벗기는커녕 퇴행을 거듭하는 한심한 시기에 새정치의 아이콘인 그가 정계 복귀를 서두룬 점은 환영할 만 하다. 이번 보선을 복귀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적 의도에도 많은 국민들은 공감한다. 그러나 정치에는 최소한의 ‘격’이 따라야 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그의 중량감에 노원병은 어울리지 않는다. 의석수 6개에 불과한 군소 야당이 당운을 걸고 고지 탈환을 외치는 곳이다. 그가 디딜 곳이 이 곳밖에 없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번 보선은 절묘하게도 그가 올라야 할 링을 만들어줬다. 고향인 부산 영도구다. 상대는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이자 친박 좌장인 김무성이다. 지난 대선에서 통합선대본부장을 맡아 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대선 패배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굳이 노원병에 집착하고 출마를 강행한다면 승자가 되더라도 흠결을 하나 달고 갈 수밖에 없다.

대선 패배후 지리멸렬 해온 야권의 분열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그의 노원병 출마는 부담이 따른다. 진보정의당은 후보를 확정했고, 민주당도 안 전 교수가 출마를 작심하자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야권 후보가 난립해 서로 정치적 도의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꼴불견이 벌어질 공산이 높다. 패할 경우 안 전 교수 역시 후폭풍을 피해가기 어렵다.

사실 노원병에 대한 정치적 지분을 따지자면 홍정욱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노 대표를 꺾고 금배지를 달았다. 노원병은 13대부터 17대까지 무려 20년간 야당 의원을 배출하며 야의 텃밭으로 뿌리를 내렸던 곳이다. 당시 30대에 불과했던 홍 전 의원은 데뷔전에서 야당의 아성을 무너트리는 기염을 토했으나 2011년 불출마를 선언하고 여의도를 떠났다. 그는 2011년 예산안을 여당이 날치기 처리한 후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물리력에 의한 의사 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년후 한미FTA 비준안이 여당에 의해 기습 강행 처리되자 주저없이 약속을 실천한 것이다. 이런저런 억측도 따랐지만 그의 결단은 입으로만 원칙과 약속을 지저귀던 많은 의원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는 불출마를 선언하며 “나아감을 어렵게, 물러남은 쉽게 여기라는 성현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했다. 노원병에서 충돌하는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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