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2.27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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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세상은 큰 것들이 눈에 띄는 법입니다. 그래서 크게 움직이고, 크게 웃고, 크게 소리치는 사람이 더 힘에 세게 보이기도 하지요. 큰 것 아래서 자라는 풀은 가녀립니다. 때론 존재감조차 ‘풀’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지기도 합니다. 오늘 그 풀이 되어봅니다. 이름없이 어딘가에 머물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눕고 바람부는대로 일어나는 풀. 그렇게 자신을 버려두는 일을 힘없는 풀에게서 배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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