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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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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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新聞)

                                                        김태원

잠옷의 사내가 아침 식탁에 앉아
배추 잎을 살피고 있다
한 장 두 장 잎을 펼칠 때마다
상큼한 채소 내음보다
역한 구린내가 난다.
노란 고갱이만을 고르던 그의 아내도
이내 눈가에 주름이 인다.
자세히 보니
이곳저곳이 벌레들뿐이다.
그들이 싸 놓은
검푸른 배설물들로 온통 어루러기져 있다.
눈 화살과 손 집게와
수돗물과 세제 속에서도 살아남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거구의 벌레들이
흰나비로 우화하지 못하고
사시사철, 아침 식단(食單)을 망가뜨리고 있다.

'무심천강변에서의 일박'(고두미) 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잠이 떨 깬 채 신문을 본다. 하루가 이렇게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아침이다. 그 안에서 밥이 되는 배추 잎을 찾고 있는 부부에게는 늘 배반과 분노로 독이 오른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보인다. 새로 듣는(新聞) 것이 온통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하고 거짓되고 슬프고 외로운 것만 그득하니 아침 밥상에 역한 구린내가 나겠지. 왜 우리의 고막에는 울리는 것이 다 더러운 말들 뿐인가. 저 높고 맑은 계곡으로 가서 귀를 씻어야겠다. 흰나비로 우화하지 못한 식단은 다 가고, 애벌레의 꿈으로 지은 두레밥상만이 남거라. 오늘도 신문에선 사람의 영혼 몇 무리가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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