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제’ 공약 실현될까.
‘책임총리제’ 공약 실현될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2.11 2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중국의 전 수상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가장 위대한 2인자로 꼽힌다. 그에게 ‘위대하다’는 수식을 헌정한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성공한 2인자라고 한다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의 2인자로 그만큼 장수를 누린 인물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장정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마오쩌뚱(毛澤東)에게 홍군 사령관 자리를 양보한 후 41년간 중국 공산당 정권에서 2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수상으로 재직한 기간만 무려 26년에 달했다. 변덕스럽고 음흉했던 지도자 마오쩌뚱 아래서 단 한번도 숙청과 유배의 바람을 맞지않았다. 늘 마오의 한발 뒤를 지키며 주변의 배신을 경계했던 마오를 안심시켰다. “언제나 마오쩌뚱이 옳다”가 그의 슬로건이자 모토였다.

저우언라이는 함께 걷다가도 햇살이 따가우면 자기가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마오에게 건넸다. 마오의 시찰을 수행할 때면 숙소 스케줄 등 일정을 직접 챙겼고, 마오가 먹을 음식과 음료를 미리 맛봤다고 한다. 그래서 외신은 저우언라이를 마오의 가정부라고 비꼬기도 했다.

닉슨은 “마오쩌뚱이 없었다면 중국에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지 못했고,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이 불길이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닉슨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가 거칠고 과격한 마오의 리더십을 보완하며 공산주의 혁명을 완성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언론의 조롱을 받을 정도로 저자세로 일관하며 자리를 유지했던 고난의 처세술이 없었다면 저우언라이에 대한 이런 평가도 없었을 것이다.

망령의 땅이자 사라진 꿈. 거세된 개. 소의 다섯번째 젖꽂지. 모두 미국 부통령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쓸모도 없고 힘도 없는 2인자의 신세를 함축한 말들이다. 존슨 밑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휴버트 험프리는 “아무도 몸을  성냥개비 하나 건네주지않는 눈보라 속에 갇혀있는 것이 부통령의 처지”라고 푸념했다. 트루먼이 부통령 시절에 정부가 극비로 추진하던 원자폭탄 개발계획을 몰랐다는 사실은 정치공학에서 2인자가 겪게될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누군가 유능한 2인자는 보스보다 먼저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에서는 탁상론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앞서가다가는 삼국지에 나오는 양수(楊脩)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유비와의 싸움에 고전하던 조조가 어느날 밤 군영의 야간 암호를 계륵(鷄肋, 닭갈비)으로 정했다. 열세의 상황에서 전쟁을 계속하자니 승산이 없고 후퇴를 하자니 천하의 망신을 살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마침 저녁 반찬으로 올라온 닭갈비 같아서 군호로 정한 것이다.

닭갈비는 먹을 살이 많지않아 뜯기가 번거롭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음식이라 진퇴양난에 빠진 조조의 처지와 닮았던 것이다. 참모였던 양수는 이 군호에서 주군의 심중을 읽어내고 철군 지시가 떨어졌다며 장수들에게 군막을 거두게했다. 조조는 자신을 꿰뚫은 양수의 지혜에 감탄했지만 그를 활용하기 보다는 목을 잘라 자신을 앞서간 행위를 엄하게 다스렸다. 그리고는 양수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던대로 철군을 단행했다. 양수는 조조를 보좌하며 수차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두터운 신망을 얻었지만 부하의 월권을 용납하지않는 보스의 기질을 헤아리지못해 명을 재촉한 꼴이 됐다. 결국 참모나 2인자의 성패는 1인자의 뜻에 달린 셈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정홍원 변호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후 총리가 대통령과 책임과 의무를 분담하는 ‘책임총리제’가 실현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에서 책임총리제를 공약했다.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야당은 당선인과 정 변호사가 동향(영남)이고, 지난 총선때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겨 보필을 받았다는 점을 들어 책임총리제 실현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여당에서는 책임 총리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후퇴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여야의 이런 논쟁이 무의미한 것은 총리가 책임총리를 넘어 ‘실세총리’가 될지, 아니면 ‘의전총리’나 ‘허수아비총리’가 될지는 전적으로 1인자인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국정의 2인자로 행정부를 통할하고,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 해임 건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총리가 헌법이 정한 권한조차도 누리지못한 것은 총리 당사자의 능력과 성향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이 이같은 권한의 행사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주요 권력을 포기하는 희생이 담보돼야 가능한 것이 책임총리제인 것이다. 약속과 원칙을 유독 강조해온 박 당선인이 책임총리제 공약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