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一筆
◇ 올해 78세인 OOO씨는 밤만 되면 두렵다. 아들 내외와 아파트생활을 한 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지만 요즘 들어선 매일 매일이 안절부절이다. 며느리와의 갈등 때문이다. 낮에는 경로당에도 들르고 인근 공원도 산책하며 시간을 때울 수 있지만 저녁 이후엔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어 꼼짝없이 방에 갇히게 된다.
원래 그는 부인과 함께 시골에서 그리 많지 않은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살았다. 그런데 1년전 갑자기 부인이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생활이 급격히 틀어졌다. 밤마다 술을 찾았고 그러다가 가슴이 답답하면 외지에 떨어져 사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움을 호소했다. 외로움이었다. 이에 큰 아들이 결국 모시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고, 그는 논과 밭 등 가산을 모두 정리해 자식들에게 나눠주고선 큰 아들과 합쳤다.
처음엔 환영을 받았다. 물론 적지않은 현금을 들고 온 게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얼마 후 본인의 흡연과 화장실 변기사용 문제로 며느리, 손녀와 갈등을 빚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부터는 “같이 못 살겠다!”는 말이 그들의 입에서 거리낌없이 터져나왔다. 경로당 친구들이 “재산을 정리할 게 아니라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둘이 편하게 살지 왜 그랬냐”고 핀잔하지만 이젠 모두 하릴없는 소리로만 들린다. 어느 땐 서러운 생각에 빨리 죽고만 싶다.
◇ OOO씨(58·교직)는 요즘 말을 잊었다. 갑작스럽게 직장암 판정을 받고 부랴부랴 받은 수술이 다행히 잘 돼 정상적인 회복중에 있지만 그의 얼굴에선 화색을 찾기가 쉽지 않다.
원래 그는 팔방미인이었다. 학교 생활은 물론이고 모든 일에 열성적이었다. 집안 일에 있어서도 사돈에 팔촌의 제사까지 챙긴다고 할 정도로 장자로서 든든한 역할을 자임했던 그였다. 건강 또한 자신있었던 터라 그동안 정기적인 건강검진엔 데면데면 임하며 그야말로 학교와 일에만 묻혀 살았다.
당연히 암판정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힘든 수술까지 잘 버텼지만 정작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향후 항암치료가 아니다. 비록 완치되더라도 자신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이른바 인식의 괴리(乖離)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자신을 감쌌던 주변의 모든 인연들이 돌연 하나같이 같잖게만 보이면서 말수까지 줄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병을 주었나”를 속으로 되물을 땐 까닭없는 증오감마저 밀려 온다. 그러면서 그동안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가족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옴을 느끼는 것이다.
두 사례는 실제다. 굳이 이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설을 앞두고서 말이다. 이제 두 사람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출세도 아니다. 가족이다.
이젠 설풍속도 많이 변했다. 귀성차량들의 반짝 전쟁은 여전하지만 설에 대한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분명 예전같지 않다. 마치 장마철에 수많은 미꾸라지가 수로에 몰려들며 하나의 거대한 용틀임을 만들어내는 듯한 그 절절한 귀성의지는 이제 없다는 것이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이른바 편의적 귀성이 보편화됐다. 설 연휴동안 해외로 빠져나가는 비행기표는 이미 동이 났다고 한다.
예전엔 집안에서 손주나 봐야 할 60대 이상 할아버지들의 취업자수가 20대의 그것을 넘어섰다고 한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고 힘들어졌다는 증표다. 지난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패륜범죄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얼마전엔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 형제까지 해치는 짐승만도 못한 이도 있었다.
늘 가까이 느껴지는 가족이지만 그 소중함은, 잃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모른다.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고, 또 직장을 잃고 배우자를 잃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가족은 과연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난 남자들도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면 제 알아서 집구석을 찾는다. 비록 늦었지만 가족을 향한 갈망은 오히려 더하다.
이번 설 연휴엔 악착같이 고향으로 가자! 그리하여 더 늦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가족들과 한솥밥을 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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