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그리고 확신에 찬 오류
7번방의 선물, 그리고 확신에 찬 오류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1.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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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영화 레미제라블을 두 번 봤다. 꼭 보고싶다는 친구와 한 번 더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싫지 않겠다.

영화관도 한번 길을 트니 자주 가게 된다. 독서 모임에서 7번방의 선물을 적극 추천하기에 직접 인터넷에 검색해서 아내와 관람했다. 6살 지능의 용구역 류승룡의 연기가 뛰어나다. 용구의 딸 예승역을 맡은 갈소원은 보석같은 최연소 여배우로 손색없다.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그 영화를 보고 왜 사형제도 존폐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차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자에게 지구를 떠나도록 영원히 격리하는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형제도가 있어야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생각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래도 사형제도를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오판을 해서 죄없는 사람을 사형시켰다면 안타까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아니 우리 근현대사만 해도 흉악범 외에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당한 이들이 숱하다. 간혹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뒤늦게 진범이 나타나 풀려난 경우도 있다.

7번방의 선물을 보면서 속으로 뜨끔했다. 확신에 찬 행동이 빚은 오류 때문이다.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여 다른 이에게 아픔을 준 기억 때문이다.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란 글을 신문에 싣는 바람에 결국 사표를 내고 변호사가 된 금태섭 변호사가 지난 해 ‘확신의 함정’이란 책을 냈다. 그는 “팩트(fact)가 확신에 영양분을 주고, 여기에 인과관계가 연결되면 도저히 변경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 된다고 믿으며 살아온 것을 후회한다.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조금 더 식견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관련된 책을 조금 더 보면 그간 확신했던 사실이 결코 확실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된다고 쓰고 있다.

졸지에 딸을 잃은 경찰청장은 현장에서 죽은 딸아이의 옷을 내리고 입을 맞추고 있는 주인공을 강제추행과 딸을 살해한 범인으로 확신한다.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결국 재판을 앞둔 주인공에게 빨리 자백하지 않으면 주인공의 딸도 똑같이 만들어 줄 것이라고 겁을 준다. 딸을 사랑하는 주인공은 결국 거짓으로 자백한다.

‘확신의 함정’은 가치, 신념, 세계관이 확신의 포장지를 두르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기독교인 독일 친위대 중 유대인 학살에 반대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묻는다. 잘못된 확신에 찬 사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소위 진보진영, 민주진영이라고 부르는 편에 들어가 보자. 그 속에도 무척 많은 갈래들이 있다.

어떤 갈래의 사람들은 무서우리만큼 그들의 정신적 지주에 대해 확신에 차 있다. 그 정신적 지주를 비판하면 그것이 정당한지, 근거가 있는 비판인지 따지지 않고 싸운다. 공무원노조를 탄압한 사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가압류 폭탄을 터뜨릴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실, FTA를 추진했던 사실, 각종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시도 등 많은 오류에 대해 분명한 평가와 사과가 있었다면 더욱 그들의 정신적 지주는 존경을 받을 것이다. 또 다른 갈래를 보자. 비례대표 의원후보나 주요한 직책에 있던 자들이 부도덕한 일을 했을 때 정말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였다면 왕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금태섭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는 내 것에 대한 확신으로 똘똘 뭉쳐있다. 2013년이 되어도 이 사회는 너무 확신에 찬 사람들이 많다. 내 편이면 무조건 동조하고 네 편이면 이유 없이 부정하고 무시하는 편가르기가 횡행한다.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우리의 사고를 확산적으로 바꿔보자. 사형제도는 물론 공항이나 수도 등 공기업 민영화,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 등 우리 현안에 대해 분별 있는 논쟁과 대화를 펼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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