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양보다 240년 앞서 초상화를 '사진'이라 부르다
<1> 서양보다 240년 앞서 초상화를 '사진'이라 부르다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3.01.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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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 사진가의 한국 사진史

<1>사진용어의 시작

20세기 초에 주도작인 시각예술 매체로 부상한 사진기술이 유럽 각국의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그들은 빛의 순수함에 빠져들었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사진이야말로 삶의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으로 인식했다.

또 그에 따른 다양한 실험 정신들이 각 분야의 사진적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현대 시각 언어의 기본이 되었다.

사진을 빛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카메라를 이용하여 빛으로 그린 시각 영상을 부른다는 명칭의 역사로 볼 수 있다.

르레상스 시대로 불리우는 1508년 이탈리아의 미술가 다빈치가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하여 그림에 빛을 적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240년 앞선 1238년(고려 고종 25년)에 초상화를 사진으로 지칭했다고 한다.

당시 70세가 된 이규보(李奎報)가 묵죽과 초상화에 능한 화가 정홍진에게 비단을 보내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해 달라고 해서 완성된 초상화에 사진(寫眞)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정홍진은 초상화를 그려 이규보에게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얼굴 형상 뿐만이 아닌 정신이나 감정을 말했다.

“수염은 거칠고 더부룩하며 입술은 두텁고 붉으니 얼굴이 춘경과 비슷한데 이것이 춘경이라면 그림자인가, 실형이가. 실형이라면 허망하여 꿈만 같을텐데, 그림자라면 꿈 속의 꿈일 따름이다.”

실제로 이규보가 쓴 둥국이상국집에 초상화를 사진이라고 했다. 동국이상국집 제19권 ‘잡서’중 달마대사 상찬원문에 초상화를 사진이라고 표기돼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초상화를 진(眞)에 영(影)을 붙여 진영(眞影)이라고 했고, 상(像)과 합쳐 진상(眞像)이라고 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사진을 보로 시를 지었다는 기록(권근이 쓴 양촌집)이 있고, 태조의 정비인 신의왕후의 초상화를 사진이라고 했다(태종실록)는 기록도 있다.

초상화를 사진이라고 부른 것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스님들의 초상화를 사진이라고 지칭했다고도 한다.

1740년대 전후에 이익은 성호사설에 초상을 비롯해 묵화, 채색화 등 전통적인 회화에 사실과 진실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진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성호사설 ‘만물문(萬物門)’, 논화형사(論畵形 似)에 사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림을 그릴 때 겉모습은 같지 않게 해도 되고 시를 짓되 앞의 경치를 읊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집에 동파가 그린 묵죽 한폭이 있는데 가지와 잎이 모두 살아있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틀림없는 사진이다.”

이익은 “정신은 모습 속에 있고 모습이 실물과 똑 같아야 그 속의 정신을 나타낼 수 있으며 사물을 실체와 똑 같게 그렸으니 이것이 바로 사진”이라고 했다.

그런데 초상화가 이렇게 사진으로의 절대적 의미를 지녔으면서도 사진이 전체적인 공통어가 되지는 못했다. 사진에 대한 경험과 접근방법에 따라 모진지법, 조상, 초상사진 등으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중국을 통해 사진을 경험한 사람들이 일본을 통한 서양문물을 만나면서 일본적 사진문화를 받아들인 관계로 많은 영향 속에 사진 개념이 수시로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초상화의 이상적인 세계와 외래문화의 만남 속에 우리 정신을 바탕으로 한 고유의 명칭이라 했다.

한국사진역사를 정리했다는 연표에 보면 우리나라에 사진의 원리가 최초로 전래된 것은 1631년이다.

진하사(進賀使)로 중국에 간 정두원 일행이 연경에 주재하고 있는 천주교 선교사에게 받은 원경설(遠鏡說)을 가져왔는데 이 책에 카메라 웁스쿠라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초상화를 사진이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은 여러 기록으로 볼 때 고려사람 이규보였다. 그의 글을 읽어보자.

“소림사에서 면벽 참선한 것은 마음을 전하자는 것이었네. 마음이 동방에 전해졌으니 몸과 형체는 서국(西國)으로 갈걸세. 현재에 있어서도 전할 것은 마음이요, 쓸데없는 것은 마음이라. 몸이 이미 떠났거늘 어찌 반드시 사진(寫眞)을 그려야 하나. 사진을 그려 마음을 구하는 것은 뱀 허물에서 구슬을 구하는 격일세. 몸이건 상(眞)이건 어느 것은 있고 어느 것은 없으리. 몸이 꿈 속의 몸이라면 상은 꿈 속의 꿈일세. 몸과 형체는 까마득히 모두 무(無)로 돌아가고 오직 마음만 달과 함께 깊이 남으리.”

 

 

정인영 사진가의 집필로 한국 사진의 역사를 조명한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명의 교차점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는 세력 확장에 나선 서양 역사의 물줄기를 타고 중국과 일본을 따라 유입되었다.

초상화로 대표되었던 조선의 회화 속에서 새로운 서양의 과학세계로 접어들며 발전한 한국의 사진사를 쉽고 재미있게, 현장의 기록을 생생히 전하는 정인영 작가의 이야기를 매주 1회씩 지면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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