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 가는 길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
투표장 가는 길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12.1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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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왕을 뽑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감람나무(올리브)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감람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기를 “나의 기름은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하며 사양하였습니다. 나무들은 하는 수 없이 무화과나무에게 찾아가 왕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하며 사양하였습니다.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기를 부탁하였습니다. 포도나무도 “신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하며 사양하였습니다.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찾아가 나무들 위에 왕이 되라 청하였습니다. 가시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들에게 호령하였습니다.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가시나무가 오히려 최고의 건축자재로 치는 레바논의 백향목마저 불살라버리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제에 전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가시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왕이 될 만한 자질은 전혀 갖추지 못한 채 권력에 눈이 멀어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을 풍자하는 판관시대의 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

한 뼘의 그늘도 만들 수 없는 주제에 자신의 그늘 아래 와서 쉬라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런 악한 자가 지도자가 된 것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자본주의라는 신을 숭배한 우리 국민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었습니다. 우리 민족과 공동체에 다시 한 번 더 이런 지도자가 세워지지 않도록 박차고 나가 조금이라도 더 정직하고 국민 다수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 후보에게 투표해야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인간을 세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개미형은 부지런히 일만하는 산업사회의 노동자를 말합니다. 거미형은 생산시설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을 말합니다. 노동 없이 먹을 것을 얻는 계층입니다. 나비형은 가장 이상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꽃 저 꽃을 다니며 수정을 시켜 주고 자신은 꿀과 꽃가루를 얻습니다. 서로 돕고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그런 인간입니다.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을 따라 투표하면 당연히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많이 내놓는 정당이 승리할 터인데 현실은 번번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개미형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개미형 인간 중에 일부는 언젠가 저도 거미가 될 것이란 생각에 거미편을 들어 투표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미들은 노력 없이 열매만 따먹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노동조합이 숱한 희생을 통해 쟁취한 것을 아무런 노력 없이 같이 누리는 얌체 비노조원과 같습니다. 개미가 거미가 되는 일은 동아밧줄을 바늘귀에 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미들 삶 전반이 나아지는 꿈을 꾸고, 나비처럼 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자신의 계층을 위한 투표는 희박한 확률의 복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부담 없는 보험을 가입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들이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자 대기업과 그들의 수족노릇을 하는 정권과 관료들은 업그레이드판 민영화 계획을 교묘히 세워 장기전을 펴고 있습니다. 국민 다수의 안정된 삶을 지키는 것은 투표에서 시작합니다.

투표는 밥을 먹여 줍니다. 일자리도 만들 수 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도 막을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불안함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습니다. 투표장 가는 길은 미끄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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