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43>
궁보무사 <143>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04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공이 놈들이 불러준대로 직접 그린겁니다"
30. 소용돌이 속에서

자그마한 사내의 두 눈알을 안주삼아 꿀꺽 삼키고 난 두릉은 옆에 서있는 주중을 향해 이렇게 다시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네. 저렇게 몸도 마음까지도 천한 놈에게 제대로 된 이름자가 어디 있겠으며, 나중에 죽을 때 저런 게 뭘 남기겠는가 요놈을 굶길 때까지 굶기다가 뒈지기 바로 직전, 놈의 머리 가죽을 칼로 도려내고 등껍질을 홀라당 벗겨내라! 놈의 머리 가죽으로는 내 말 안장 닦아내는 솔로 쓸 것이며, 벗겨낸 놈의 등껍질로는 전장(戰場)에 나갈 때 사용하는 작은 북을 만들 것이다. 어쨌든 놈으로선 후세에 남겨놓을 만한 것이 있으니 죽어도 영광이 아니겠느냐"

두릉의 말을 듣고 난 주중은 뭔가 눈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함께 왔던 그의 부하 두어 명이 발바둥치며 울부짖는 자그마한 사내를 억지로 끌고 가 버렸다.

"이곳 동굴 감방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몇 명이며 누구의 부하인가"

두릉이 주중에게 다시 물었다.

"네. 모두 다섯 명인데 제가 데리고 있습지요."

주중이 정중한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 동작들이 매우 빠릿빠릿하고 체력 또한 괜찮던데, 이런 동굴 감방에서 죄수들이나 지키고 있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재목들이야. 이들을 제대로 훈련시키면 전투에서 크게 쓸모 있는 용사들로 써먹을 수 있겠으니 내 부하 괴정의 휘하로 당장 보내주게나."

"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주중이 다시 한 번 정중한 자세로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두릉은 먼저 몸을 깨끗이 씻고 난 다음 오근장 성주께서 보내주신 의복으로 갈아입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가지고 두릉이 집에 돌아오자, 정원 나무 그늘 아래에 평상을 펼쳐놓은 채 그 위에 지그시 누운 채로 하녀에게 안마를 받고 있던 그의 아내가 갑자기 도끼눈을 치뜨며 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 가서 밤새도록 술 퍼마시고 계집년 끼고 놀다가 이제야 겨우 들어오는 거요"

아마도 그의 아내는 어젯 밤에 벌어진 천지개벽(天地開闢)할 만큼 시끌벅적하고 끔찍스러웠던 일들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듯 한 눈치였다.

두릉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지 그저 아내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남편 두릉과 눈싸움이라도 한바탕 벌이려는 듯 지지 않고 똑바로 마주 쏘아보았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린 두릉은 마른 침을 연달아 꿀꺽꿀꺽 삼키고 난 후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가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