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1%의 벽
견고한 1%의 벽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11.19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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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최근 벨기에의 한 도시에 저택을 구입해 구설에 올랐다. 정부의 ‘부자세’를 피하기 위해 국외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서다.

이에 앞서 410억달러를 보유한 프랑스 최고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회장이 벨기에에 국적을 신청해 같은 혐의를 받으며 국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부터 연간 100만유로(14억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에 대해 최대 75%까지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이때문에 중과세를 면하기 위해 해외로 거처를 옮기는 부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언론은 이를 ‘세금 망명’이라고 부른다.

웃기는 것은 이웃나라 영국의 행태이다. 영국 정부는 아르도 루이뷔통 회장이 벨기에 국적을 취득키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에게 명예 기사 작위를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보수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프랑스 혁명(1979년) 이래 프랑스에서 이런 독재는 없었다”며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증세정책을 비난했다.

이어 “재능있는 프랑스인들이 런던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며 아르도 회장에게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영국은 이미 지난 7월 프랑스에 사회당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영국으로 본사를 옮기는 프랑스 기업들을 환영한다며 호객(?)에 나섰었다. 돈보따리를 싸들고 올 부자를 유치하기 위해 이웃나라 내정 간섭도 서슴치않는 영국도 부자들에게 매기는 세금은 만만찮다. 한때 ‘세금폭탄’을 피해 유명 연예인들이 잇따라 해외로 떠났던 전력이 있다. 아무리 부자라도 번 돈의 75%를 세금으로 내야한다면 난감할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최고세율 75%의 부자세가 도입된다면 이민 사태가 벌어져 부자들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프랑스 부자들의 외국 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행 소득세율도 부자들이 감당하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가전제품회사인 다티(Darty)의 소유주 다티와 다국적 유통회사 까르푸의 소유주인 뫼니에 등은 벨기에에 거주한다. 배우 알랭 들롱과 가수 샤를르 아즈나부르 등은 스위스에 거주한다. 해마다 400명 가까운 국민들이 세금을 피해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들의 행적을 철저하게 추적해 세금을 추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는 1년에 6개월(183일) 이상 국내에 거주하면 해외 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때문에 적지않은 부자들이 실제로는 고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해외 체류 기간을 조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국세청은 이같은 허위 기록을 조사해 하루라도 국내거주 기간을 초과하면 가차없이 세금을 물린다. 연간 200명 안팎이 국세청의 허위기록 조사에 걸려들어 세금을 징수당한다. 정부와 부자의 세금 전쟁이 올랑드 정부가 내년부터 그 수위를 더욱 높이기로 하면서 새삼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호들갑처럼 프랑스 부자들 대부분이 해외 이주를 고려할 정도로 동요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떠날만한 인물은 모두 떠나서이기도 하겠지만 고국을 뜨기보다는 정책을 수용하는 부자들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는 “한 국가의 국민이 되려면 때때로 내게 이롭지않은 사람들도 용인해야 한다”며 “(중과세는) 충격적인 현실이지만 프랑스 국민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100만유로 고소득자에 대한 75% 과세는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 다수가 선택한 정책이기도 한 만큼 감내하는 것이 국민된 도리라는 견해로 읽혀진다.

미국의 세계적 투자자 워렌 버핏은 타피보다 한참 앞서 나간다. 그는‘슈퍼 부자’들에 대한 증세로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빈민·중산층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을 위해 싸우고 대다수 미국인이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하는 동안 우리 같은 슈퍼부자들은 비정상적인 감세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자책했다. 빌 게이츠 등 양식있는 부자들이 그에 공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민주화와 함께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문제가 논쟁이 된지 오래이다.

정치권에서는 최고 세율이 38%인 소득세 과표구간의 조정과 개편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1% 사이에서 버핏이나 타피 같은 목소리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99%가 1%에게 철저하게 소외되는 기이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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